솜씨 서툴지만 정성껏 차례상
솜씨 서툴지만 정성껏 차례상
  • 한인섭 기자
  • 승인 2007.02.16 09: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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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사별 1년에 쌀 서말 셋집 내줘야
▲ 필리핀에서 온 한국생활 7년차 마리아 테레사 그리뇨(40), 김영광(7.위), 김영호(5) 두아들이 있어 한국생활이 행복하다./유현덕기자 마을 이장 "3母子 집 마련 해주는게 소원" 필리핀서 시집온 그리뇨씨의 설맞이필리핀에서 청원군 가덕면으로 시집온 마리아 테레사 그리뇨씨(40)는 한국의 명절 문화가 아직 낯설기만 한데다 남편과도 사별한 상태여서 두 아들의 초롱초롱한 눈망울만 마주하며 이번 설을 맞고 있다. 여느 주부들처럼 제사상차림과 음식 장만, 아이들 설빔을 마련한다는 것은 꿈조차 꾸기 어려운 형편이기 때문이다. 7년전 필리핀에서 결혼식을 올린 후 남편과 청원군 가덕면 상야 1리 객경리 마을에 신혼살림을 시작했을 때만해도 마리아는 한국생활에 꿈이 부풀어 있었다. 하지만, 결혼 3년만에 남편이 급성 간암으로 병석에 눕더니 두아이(김영광 7·김영호 6)만 남겨 둔 채 이듬해인 2004년 세상을 떴다. 건설노동자로 일했던 남편이 벌어오는 돈으로 그나마 생활을 꾸렸으나 요즘은 50만원 안팎의 기초생활수급비로 두 아들과 어렵사리 살고 있다. 마을 어른들과 유일한 혈육인 아이들의 고모부 김용남씨(46)가 돌봐주긴 하지만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마리아씨는 1주일에 두번씩 군민회관에 나가 배운 솜씨로 정성껏 떡국을 만들어 제상을 마련할 생각이다. 마리아씨는 이역만리 필리핀에서 한국행을 선택할 때 세상을 뜬 남편만 바라보고 왔던 탓인지 제사나 명절 차례상을 차리는 일은 끔찍이 챙긴다는 게 마을주민들의 귀띔. 그래서 마을 주민들과 용남씨는 마리아씨의 이런 모습과 어린 아이들을 위해 고생하며 열심히 살아주는 게 고맙기 그지없다. 요즘 세태로 흔치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설이야 그렇다 치지만 앞으로 영광이 가족들이 앞으로 살아갈 일 역시 만만치 않다. 지금 살고있는 집조차 조만간 내줘야하기 때문이다. 10여평 남짓한 농촌주택을 수리해 1년에 쌀 3말의 삯을 주고 살고있으나 집주인 사정 때문에 내줘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여름엔 안방 천장에서 빗물이 줄줄 새 마을어른들이 나서 고쳐줬고, 이번 겨울에는 기름 값이라도 줄여보려는 요량으로 바람막이 공사도 해줬지만, 올해까지만 사용이 가능하다. 마을 이장 김영래씨(63)와 용남씨는 영광이 가족에게 컨테이너라도 집 한 채 마련해주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고 있다. 황금돼지의 해 정해년을 맞는 이들의 소망인 셈이다. 용남씨는 이를 위해 이미 자신의 집 뒤편에 집 지을 땅도 마련해 놓았다. 이장 김영래씨는 "남편까지 사별한 마리아가 이국 땅 시골마을에서 아이들과 잘 살아주는 것에 대해 고맙고, 대견하게 생각한다"며 "올해는 영광이 가족의 새 보금자리를 마련해 주는 것이 마을 사람들의 유일한 소망"고 말했다. 김용남씨는 "아이들을 맡아 줄테니 고국으로 돌아가는 것이 어떠냐고 몇차례 권유도했지만, 아랑곳 없이 가정을 꾸리고 있다"며 "상야리 1구에서 유일한 어린아이들인 영광이와 영호가 엄마와 살 조그마한 집을 마련해주는 것이 새해 꿈"이라고 말했다. 마리아씨는 "남편은 떠났지만 한국의 생활환경과 마을 주민들의 인심이 너무 좋아 떠날 수 없다"며 "아이들의 행복한 미래를 위해서는 어려워도 꿋꿋하게 함께 살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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