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업 정서, 누굴 탓하나
반기업 정서, 누굴 탓하나
  • 권혁두 기자
  • 승인 2018.02.18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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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 권혁두 국장

뉴욕타임즈가 평창 올림픽 개막 직전 이런 보도를 했지요. `한국 기업들이 올림픽을 후원하거나 마케팅을 펼쳤다가 오해를 받을까 봐 두려워하고 있다'며 `정부가 주도한 스포츠 사업을 후원했다가 뇌물 혐의를 받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례가 이런 분위기를 형성했다'고 보도했습니다. 국내 한 언론은 이 기사를 인용하며 `개최국 이미지를 앞세워 기업 브랜드를 높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왔는데도 올림픽에서 국내 기업들은 보이지 않는다'고 개탄했습니다. 올림픽 개막식 리셉션에도 재계 인사들은 없었다고 은근히 정부를 꼬집기도 했지요. 그러면서 스포츠 후원이 빌미가 된 최순실 사태와 새 정부의 대기업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원인으로 꼽았습니다.

해석 차가 있겠지만 `대기업을 미워하는 정권이 들어서 기업의 스포츠 지원이 범죄가 되는 풍토가 만들어졌고, 그래서 올림픽에서 기업들이 기를 펴지 못하고 있다'는 뜻으로도 읽혀집니다.

그렇다면 평창 올림픽 직전에 대기업과 관련해 벌어진 일들을 대충 살펴볼까요. 경찰은 세금 포탈 혐의로 이건희 삼성 회장을 검찰에 송치했습니다. 차명계좌 260개가 추가로 드러나 세금 82억원을 포탈한 혐의를 받습니다. 지금까지 드러난 그의 차명계좌는 1489개, 금액은 4조5000억원에 달합니다. 삼성은 선대로부터 상속을 받았다고 주장하지만 비자금일 것이라는 반론도 만만찮지요. 어쨌든 자신의 돈을 남의 계좌에 넣어 관리하는 행위는 그 자체로 위법인데다 목적도 의심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이 회장은 일가의 자택 수리비용 30억원을 삼성물산에서 대납도록 한 혐의도 받고 있습니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도 자택 인테리어 공사에 회사 돈 30억원을 가져다 쓴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습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법정구속됐습니다. 롯데면세점 사업과 관련해 박근혜 전 대통령으로부터 부정한 청탁을 받고 K스포츠재단에 70억원의 뇌물을 공여한 혐의가 인정됐습니다.

앞서 구속된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은 혀를 차게 만듭니다. 그는 임대주택 분양가를 조작해 1조원의 부당이득을 취한 혐의를 받습니다. 임대주택 수요자들인 서민들의 주머니를 턴 파렴치한 범죄지요. 이렇게 번 돈으로 매제에게 퇴직금으로 200억원을 주고 아내의 회사를 계열사 간 거래에 끼워넣어 100억원 이상을 통행세로 챙기게 했다고도 합니다. 재계 순위 16위의 대기업이 돈을 버는 방식이 이 모양입니다.

공정거래위가 과징금 79억5000만원을 부과한 하이트진로의 후안무치도 공분을 샀습니다. 하이트진로에는 중소기업 삼광글라스가 맥주용 공캔을 납품하고 있습니다. 직접 납품하던 이 회사는 어느 날부터 공캔 1개를 납품할 때마다 통행세 명목으로 2원씩을 서영이앤티란 회사에 내왔습니다. 노점상에게 자릿세 뜯듯 납품업체를 등쳤던 서영이앤티의 최대 주주는 하이트진로 회장의 아들이었습니다. 나중에는 맥주 캔 원료에까지도 통행세를 받아 총 70억원 가까운 이득을 챙겼다고 합니다.

지난 2016년 중소기업이 피땀 흘려 개발한 기술을 대기업에 뺏긴 사례는 644건에 달합니다. 그러나 공정거래위나 경찰에 신고된 건은 3.8%에 그칩니다. 대기업에 목줄이 잡힌 을의 입장에서 신고나 소송은 자살행위겠지요. 해서 정부가 최근 `대기업의 중소기업 기술탈취 근절대책'을 내놨습니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도입이 골자입니다. 정부가 이런 대책을 세운 나라가 또 어디 있을까 싶습니다.

그래서 묻고 싶은 겁니다. 재벌들이 올림픽에서 낯을 들지 못하는 이유를 반기업 정부, 반기업 정서로 몰아가는 것이 합당하냐고요. 반기업 정서가 있다 하더라도, 대기업들이 자초한 책임은 없느냐고요.

영화 `올 더 머니'로 요즘 새삼 유명해진 1970년대 억만장자가 있지요. 석유로 돈을 벌어 당시 세계 최고 갑부로 공인됐던 폴 게티가 주인공입니다. 그는 영화에서처럼 납치된 손자의 몸값을 거부할 정도의 수전노로 알려졌습니다. 납치범들이 손자의 귀를 잘라 보내고 나서야 협상에 나서지만 그가 보낸 돈은 요구받은 액수의 20%에 불과했습니다. 세금 공제 혜택이 가능한 범위에서 돈을 보낸 것이지요. 생전엔 탐욕의 화신으로 불렸지만 말년에 그의 모습은 달랐습니다. 미술관을 지어 평생 모은 천문학적 액수의 미술품과 기부금을 내놓았습니다. 사람들이 작품을 무료로 관람하게 해달라는 것이 그의 기탁 조건이었다고 합니다.

이건희 회장이나 롯데 신격호 회장의 말년은 지금 국민들에게 어떤 울림을 주고 있는지도 묻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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