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여년 전 영국 여인의 발길이 머문 동굴...
단양 금굴유적
120여년 전 영국 여인의 발길이 머문 동굴...
단양 금굴유적
  • 우종윤<한국선사문화연구원장>
  • 승인 2018.02.18 18: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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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시선-땅과 사람들
▲ 우종윤

두루마기에 갓 쓰고 선글라스를 끼고 나귀와 나룻배를 타고 여행한 150cm 정도의 키 작은 영국 여인 이사벨라 버드 비숍(Isabella Bird Bishop, 1831~1904년). 영국왕립지리학회 최초의 여성회원이기도 한 비숍은 세계각지를 여행하며 11권의 책을 저술하였는데, 그 중 8번째 책이 조선을 여행하고 쓴 “조선과 그 이웃들(Korea and Her Neighbors, 1897년)이다.

비숍이 67살에 쓴 책으로 그의 생애 최고의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이 책은 단순한 여행기라기보다는 자연, 지리, 역사, 사회, 문화 등을 철저하게 조사 연구하여 기록한 학술답사기의 성격을 띠고 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되고 있다.

비숍이 우리나라에 첫발을 디딘 것은 1894년 1월 63세 때이다. 이후 1897년 3월 사이에 4차례 방문하여 9개월 동안 여행하였다. 비숍이 서울 마포에서 나룻배를 타고 한강을 거슬러 여행을 떠난 날이 1894년 4월 14일. 그로부터 13일이 지나 단양에 도착하여 4월 27일부터 5월 2일까지 6일간 단양일원을 여행한다.

4월 30일에는 비숍이 조선에서 본 가장 아름다운 강 마을로 꼽은 도담마을을 답사한 후, “도담마을 근처에서 동굴을 답사하였는데, 동굴은 아치형으로 높이가 13m이고, 천정에는 돌고드름이 붙어 있으며 상당히 높다. 이 동굴을 96m까지 들어갔으나 더 이상 들어가지는 못하고 되돌아 나왔다.”라고 기록하였다. 동굴의 규모, 형상 및 주변 식생 등 지리학자로서의 관찰력이 뛰어남을 엿볼 수 있다,

이는 비숍이 조선을 여행하며 남긴 동굴에 관한 유일한 기록이다. 이 동굴이 우리나라 역사의 시작점이 되는 단양 금굴이다. 도담삼봉에서 동쪽으로 1.2km쯤 떨어져 있다. 필자는 이 동굴을 1979년 초가을과 1980년 2월에 2차례 답사하였다. 굴 입구는 정남향으로 햇볕이 잘 들고, 동굴 규모는 길이 85m 이상, 최대너비 10m, 최고 높이 약 8m(비숍의 기록과는 차이가 있음)의 석회암 동굴로, 현재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가장 큰 구석기시대 동굴유적이다. 현재 굴은 85m 지점이 막혀 있어 전체 길이는 확인할 수 없으나, 비숍의 기록으로 보면 적어도 100m 이상 되는 큰 굴 임을 짐작할 수 있다.

이 금굴은 충주댐 수몰지역 조사의 일환으로 1983~1985년까지 3차례에 걸쳐 발굴조사(연세대학교 손보기 교수)하였다. 지리학자 비숍이 답사한 후 90년 만에 고고학자가 선사문화의 존재를 확인한 것이다. 발굴조사 결과 전기 구석기시대(약 70만년 전)부터 청동기시대(약 3천년 전)까지 선사시대의 전 시기에 걸친 문화층이 확인되었다. 전기 구석기(1·2문화층), 중기 구석기(3문화층), 후기 구석기(4문화층), 중석기(5문화층), 신석기(6문화층), 청동기(7문화층) 등 7개의 문화층이 계기적으로 잘 발달되어 있어, 금굴에서 선사인류의 삶이 끊임없이 이어져 왔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구석기는 문화층마다 서로 다른 석기제작기법으로 만든 석기가 출토되어 한 유적에서 기술 및 형태변화의 계기적 발전양상을 층위적으로 뚜렷이 살필 수 있다는 점에서 학술적 가치가 높게 평가된다. 이와 함께 각 층위에서 당시의 환경을 가늠할 수 있는 사슴, 사자, 코뿔소, 하이에나, 원숭이 등 49종의 동물화석이 출토되어 구석기시대의 자연환경 및 당시 사람들의 생활상을 복원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금굴 1문화층의 연대는 석기제작수법 및 형식으로 볼 때 약 70만년 전으로 가늠되며, 이때부터 구석기시대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으로 국사 교과서에 서술되어 있다. 우리 역사의 시작이 지금으로부터 120여년 전 영국 여인 비숍이 답사했던 동굴, 바로 단양 금굴에서 비롯되었음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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