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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나무

시간의 문앞에서 김경순<수필가>l승인2018.02.14l수정2018.02.13 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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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경순<수필가>

눈이 어지럽게 흩날린다. 눈송이 하나하나에 각각의 눈이 달렸을까. 자신만이 가야 할 곳이라도 있는 듯 그렇게 서로를 비켜서 날아간다. 먼지가 되었다가 어찌 보면 꽃잎이 되었다가 그렇게 부유하고 있다. 난분분 난분분, 눈발은 어느새 내 안으로 들어와 어지럽게 내린다.

오랜만에 가진 휴식이었다. 마음도 몸도 쉴 겸 서해로 일주일간의 여행을 다녀왔다. 남편은 아내의 홀로 여행이 걱정되었는지 탐탁지 않아 했다. 결혼 전에도 후에도 못해 본 혼자만의 여행에 두렵기도 했지만 사실 내 가슴은 설렘이 더 컸다. 그동안 못 잔 잠도 실컷 자리라. 읽고 싶던 두꺼운 책들도 열권을 싸들고 갔다.

안면도의 황도라는 곳에 숙소를 잡았다. 마을에서 제일 꼭대기 언덕 위에 위치한 숙소 덕에 바다의 풍경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었다. 노을지는 바다에서 하염없이 앉아 있고 싶던 소원도 이룰 수 있다 싶었다. 그런데 다음날 노을이 숙소 뒤편으로 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결국, 나는 느지막이 일어나 아침 겸 점심을 먹은 후 오후에 책들을 싸안고 노을을 보기 위해 겨울 해수욕장을 찾아다녔다. 겨울 바닷가는 한산했다. 때마침 내린 눈이 반가웠다. 그곳에서 나는 파도가 치는 모래사장 위에도 눈이 쌓인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알싸한 겨울바람에 손이 곱고 볼도 쓰라렸지만 가슴은 여간 시원한 것이 아니었다. 그러다 파란 하늘 위에서 바다를 굽어보던 태양이 바다 속으로 몸을 담그는 것을 목격하게 되었다. 태양은 지평선에 선홍빛의 물을 들이고는 천천히 바다 속으로 사라져 갔다. 노을이 지는 모습을 과학적으로 들여다본다면 지구의 자전으로 간단명료하게 설명할 수 있다지만 나는 그 순간은 고통이라 생각되었다. 얼마나 힘들면 저렇듯 하늘과 바다를 붉게 물들일 수 있을까. 그 모습에 가슴이 아려왔다. 그래서일까. 나는 한참을 차가운 계단참에 앉아 하염없이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 그렇게 겨울 바닷가를 헤매다 밤늦게 숙소로 돌아와 가족들과 카톡으로 내 안부를 확인시켜 주곤 했다. 그때마다 남편과 아이들은 왜 그리 늦게 다니느냐고 걱정을 한다. 한동안 힘든 나날이었다. 그래서 떠나온 여행이다. 그런데 가족들은 아내와 엄마가 여자라는 이유로 걱정인가 보다. 하긴 요즘 세상이 여자에게는 만만치 않은 세상이긴 하다.

요즘 전 세계의 여자들이 입을 열기 시작했다. 나도 피해자라는 `me too'운동으로 말이다. `미투'운동은 성폭력 생존자들이 SNS를 통해 자신의 피해 경험을 잇달아 고발하는 현상을 일컫는다. 우리나라에서도서지현 검사의 용기 있는 성추행 폭로 이후 사회 전반으로 확산하고 있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여자는 가부장제의 불합리적 제도 앞에서, 순종하는 착하고 약한 존재로 여겨졌다. 때문에 남자들의 이기적인 권력 앞에서 `여자는 그래야 한다.'라는 말도 안 되는 논리가 당연시됐었다.

바람이 매섭게 불고 있다. 눈발들의 방향도 잃게 하고, 나무들의 몸도 심하게 흔들어 놓는다. 어지러운 내 마음을 알기라도 한 것일까. 아니면 이사회의 여자들의 예상치 못한 반란 때문일까. 하지만 나는 믿는다. 바람이 불면 불수록 나무는 더 깊이 뿌리를 내리고 단단한 거목으로 살아가듯 내안의 나무도, 우리 사회의 나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흔들리면서 더욱 건강하고 조화로운 사회의 나무로 다시 태어나리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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