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탄
연탄
  • 김순남<수필가>
  • 승인 2018.02.12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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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 김순남

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날이면 고향집 따뜻했던 아랫목이 그리워진다. 마당가 축대 위에는 언제나 나뭇가리가 버티고 있었다. 땔감 나무를 해오기 위해 아버지는 농한기인 겨울에도 잠시도 쉴 틈이 없으셨지 싶다. 식구는 많았지만 지게를 지고 나무를 해 올 수 있는 사람은 가족 중 아버지밖에 안 계셨다.

힘든 아버지의 어깨를 조금이라도 가볍게 해준 것이 연탄보일러 덕이지 싶다. 부엌 한쪽에 자리 잡은 연탄보일러는 나무를 지피는 만큼 방이 뜨끈하지는 않아도 언제나 방에는 따뜻한 훈기가 돌았다. 그뿐이 아니다. 연탄아궁이 위에는 찜통에 물을 데워 따뜻한 물을 언제든 쓸 수 있었다. 하루에 두세 번 연탄을 갈아야 하는 번거로움 같은 건 대수롭지 않았다.

그 시절, 우리 어머니들은 겨울이 오기 전에 연탄 들이는 일과 김장을 하는 일이 월동준비의 큰 목록이었지 싶다. 창고에 연탄을 가득 쌓아놓고, 항아리 가득 김장김치를 담아 그늘진 곳에 묻어두면 마음이 든든하다고 하셨다. 바깥 날씨가 추워도 따뜻한 아랫목 이불 속에 발 집어넣고, 고구마에 김장김치면 친구와 오래도록 이야기꽃을 피울 수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따뜻함을 주는 연탄보일러도 시대의 변화에 따라 시들해졌다. 신혼 시절 주위에는 기름보일러를 쓰는 집들이 차츰 늘어나기 시작했다. 타고 남은 연탄재를 밖으로 들고나가다 비슷한 또래의 옆집 새댁을 만나면, 그녀는 기름보일러의 편리함을 자랑삼아 늘어놓았다. 그런 날이면 나만 불편한 세상에 머물러 있는 듯 여겨져 안달을 냈지 싶다. 연탄불 갈이가 힘들게 느껴지고, 타고 남은 연탄재를 쓰레기 수거차가 오기 전에 대문 밖으로 내다 놓는 일도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니었다.

연탄을 하얗게 태우는 날들이 많이 흘렀다. 아파트로 이사하며 자연스레 연탄과 결별을 하게 되었다. 아파트에서는 눈, 비가 내려도 난방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었다. 매년 연말연시가 되면 TV 화면에서 연탄 나눔 기부자와 봉사하는 장면을 접하게 된다. 아득히 먼 시절 흑백사진을 보는 듯 여겨지다가도, 잊고 지내던 어려운 이들을 다시금 생각하는 계기가 되곤 했다. 불편하지만 따뜻한 정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장면이 그리울 만큼 많은 시간을 건너왔다.

지난가을 시아버님을 떠나보내시고 시어머니께서 혼자 시골에 계신다. 어머니 집은 연탄과 기름 혼용 보일러지만, 어머니는 난방비를 아끼시느라 연탄보일러만 사용하신다. 연일 한파가 이어지고 저녁마다 연탄 갈아 넣는 일이 걱정되어 전화로나마 안부를 여쭈었다. 어머니는 “괜찮다. 방이 따스워 좋다. 노는 방이 아깝지만….” 하신다. 자식이 칠 남매가 있지만 모두 떨어져 살고 있으니 따뜻한 방에 자식들을 누이고 싶은 어머니 마음에 쓸쓸함 마저 보태진 것 같아 애잔한 마음이 든다.

삼십오 년을 며느리와 시어머니로 살아오며 호들갑스럽게 뜨겁지도, 그렇다고 냉랭하지도 않은 고부 사이가 꼭 연탄의 따뜻함을 닮은 듯하다. 한 번 붙은 불은 제 몸을 다 태우고 새 연탄에 불길을 전해주고야 하얀 재로 변한다. 부모님의 사랑이야말로 자신을 온전히 태우는 연탄처럼 끝없는 자식사랑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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