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관 사법처리, 타당하지 않다
소방관 사법처리, 타당하지 않다
  • 장선배 충북도의원(민주당·청주 3)
  • 승인 2018.02.11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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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 장선배 충북도의원(민주당·청주 3)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는 우리 사회의 총체적인 부실과 안전 불감증의 민 낯을 보여줬다. 경제논리에 매몰된 건축물 규제완화, 건물주의 부실한 소방관리, 소방차로를 막은 불법주차, 소방당국의 점검 소홀, 부족한 소방 투자와 아쉬운 초기대응 등 민간과 공공부문 모두 허점투성이였다.

이런 탓에 국민의 충격은 컸고 근본적인 대책 마련 요구도 거셌다. 이에 정부는 안전을 강화하기 위한 투자와 다각적인 제도 개선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이번 참사가 반드시 우리의 안전문화 수준을 한 단계 높이는 계기가 돼야 할 것이다.

안전성 확보와 함께 남겨진 또 다른 과제는 현장 소방관들의 권한과 책임 한계를 어떻게 설정해야 하느냐의 문제다.

지금까지 대형 참사가 일어나면, 재난대응 공직자들의 대해서도 책임을 추궁하고 희생양을 삼기도 했다. 제천 화재 참사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그동안 초기 대응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많았고, 이에 대한 경찰 수사가 진행됐다. 결국 화재 현장 지휘관이었던 제천소방서장과 지휘팀장이 최근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불구속 입건됐다.

현장 소방관들의 대응에 대해 질책도 있고 논란도 많지만, 한 가지 뚜렷한 경향은 소방관들의 처벌에 반대하는 여론이다. 많은 국민들은 초기 대처에 아쉬움을 나타내면서도 사법처리에는 반대하고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사법처리 반대 청원이 게시됐고 호응도 컸다. 현장 소방관 사법처리의 부당함을 주장하는 제천의용소방대원들의 1인 릴레이 시위도 계속되고 있다.

많은 전문가들도 가용인력과 장비를 감안할 때, 당시의 상황은 현장 소방관들의 대응능력 범위를 벗어난 수준이었다고 분석한다.

필자도 결론부터 얘기하면, 현장 소방관들의 사법처리는 타당하지 않다는 것이다. 당시에 인력과 장비가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만이 아니다. 기본적으로 현장 상황 판단이나 작전 지휘에 대한 책임을 법의 잣대로 재단하는 것이 합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재난상황에 대한 현장 판단과 대응의 모든 권한은 전적으로 소방관들에게 맡겨야 한다. 그리고 그 결과도 그들 스스로의 몫으로 인정해 줘야 한다. 소방관들이 현장에서 위법한 행위를 하지 않는 한, 또 자신들의 의무를 의도적으로 거부하거나 해태하지 않는 한, 법으로 따질 일은 아니다. 비록 일반인들이 봤을 때 대응에 아쉬움이 있더라도 그렇다.

현장 상황 판단과 대응의 문제점은 소방조직 내부에서 자체적으로 처리할 사항이다. 실책이 있다면 꼼꼼하게 따져서 징계를 해야 한다. 또 현장 대응 상의 문제는 치열하게 논의하면서 개선책을 찾고 끊임없이 훈련해 나가야 한다.

현장의 판단과 작전을 일일이 법적인 기준으로 판단한다면, 위기의 상황에서 누가 목숨을 걸고 화마와 싸우겠는가. 누구라도 적당히 규정에 어긋나지 않는 수준으로만 화재진압과 구조를 하려 들지 않겠는가.

소방관들은 사명감과 나름의 소명의식으로 재난에 맞서는 사람들이다. 사법처리는 그들의 의욕과 사명감을 꺾는 것일 뿐이다. 그들의 사기를 끌어올리려면 권한을 부여하고 책임의식을 높여줘야 한다. 여기에 투자를 확대하고 국민적 신뢰를 보낼 때 소방의 재난대응 능력이 크게 높아질 것이다.

이번 제천 화재를 계기로 현장 상황판단과 대응은 소방관의 사법책임 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으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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