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위 있는 죽음이란
품위 있는 죽음이란
  • 권진원<진천 광혜원성당 주임신부>
  • 승인 2018.02.08 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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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 권진원<진천 광혜원성당 주임신부>

예전에 임종 전 사제의 기도를 청해서 병원 임종실을 방문했습니다. 한 어르신이 숨을 헐떡이며 괴로움 중에 생의 마지막 순간을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가족 중 아직 미국에서 작은아들이 오지 않았으니 기다려달라고 하자 언제 도착하느냐고 물어보고 그 시간까지 의료진의 도움을 받아 숨은 쉬고 심장은 뛰게 해준다 했습니다. 그냥 편안히 보내드리자고 말하고 싶었지만 차마 가족이 아니기에 그렇게 말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리고 작은아들이 오기까지 그 가쁜 숨으로 이틀을 더 버티셔야 했습니다. 의식도 없이 숨만 붙어 있게 해주고 아들을 만나는 것이 이분에게 필요한가? 임종자는 생각지 않고 가족의 위안만을 찾는 것은 아닌가? (돌아가시기 전에 얼굴이라도 볼 수 있었다는)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무의미한 연명의료처럼 느껴졌습니다. 그 이후 우리나라에도 이런 임종과 관련된 법이 생긴다고 하여 관심을 갖고 지켜보았는데 드디어 시행이 되었습니다.

지난 4일 6개월여의 시범을 마치고 정식으로 연명의료결정법이 시행되었습니다. 정식명칭은 `호스피스 완화의료 및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률'인데 줄여서 연명의료결정법 또는 연명의료결정제도라고 부릅니다.

이 제도는 회복 가능성이 없다는 의학적인 판단 아래에서, 인공호흡기 등과 같은 생명유지만을 위한 의료행위를 하지 않는, 즉 자연스러운 죽음을 선택할 수 있도록 돕는 절차에 관한 것입니다. 또한 연명의료의 중단이나 유보에 해당하는 의료행위는 심폐소생술, 인공호흡기, 혈액투석, 항암제 투여에 관한 4가지 것으로 한정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많은 언론과 방송에서는 이 연명의료결정법을 Well-Dying이라고 하면서 존엄사라는 단어를 써서 표현하고 있습니다.

지극히 위험하고도 잘못된 표현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마치 이렇게 죽어야만 잘 죽는 것처럼 품위 있는 죽음을 맞이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한 생명의 숨이 끊어지는 그 순간은 언제나 존엄한 순간입니다. 어떤 죽음이 품위 있고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생명 그 자체가 가장 소중한 것이기에 모든 죽음은 고결합니다.

존엄사라는 단어는 (이 단어 자체를 어떤 형태의 죽음을 지칭하는 것으로 사용되면 안 됨) 사실 생명에 관한 자기 결정권에 가장 중요한 포인트를 가집니다. 안락사의 개념에는 인위적, 인공적, 외부적이란 표현이 핵심이며 무의미한 연명의료의 중단에 관해서는 전문가에 의한 회복불가능성과 임종의 임박에 관한 두 의미가 중요하게 작용합니다. 그렇기에 혼용해서 쓰다 보면 모든 것이 혼돈되고 자기의 필요에 의해서 해석하고 또한 그 법을 적용하게 될 가능성이 내포합니다.

요 며칠 시행된 사례를 보니 환자의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가족의 동의와 합의로 연명의료 중단이 몇 건 시행되었다는 기사를 접했습니다. 그 사례만 보더라도 환자의 결정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가족이 평소 그런 죽음을 원했다는 의사만 확인하면 됩니다. 자기결정권이 가장 중요하다면서 사실 자신의 죽음에 대해 자신은 아무것도 한 것이 없습니다.

이런 용어의 무분별한 사용과 혼용은 사람들에게 이 법이 단순히 가족들의 고통과 경제적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장치로 밖에는 생각되지 않을 것입니다.

의식은 갖추어지지 않고 성급하게 시행됨으로 그 폐해가 커지지는 않을까 걱정이 됩니다.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있는 생명경시풍조를 생명의 문화로 바꾸는 일이 선행되고 우리 사회가 품위 있는 죽음에 관해 논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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