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더러의 눈물
페더러의 눈물
  • 강대헌 <에세이스트>
  • 승인 2018.02.08 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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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헌의 소품문 (小品文)
▲ 강대헌

페더러가 울먹거리다가 눈물범벅이 돼 우승 소감을 밝힐 줄은 몰랐어요. 눈물은 느닷없이 터지는 게 맞으니, 그리 놀랄 만한 일도 아니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네요.

저는 달랐습니다. 페더러가 예선부터 준결승까지 순탄하게 승리를 했고, 결승 경기도 쫓기는 모습 없이 여유롭게 운영을 했기에 그가 울거라곤 예측하지 못했던 겁니다.

“페더러가 왜 울었을까? 한 두 번 우승컵에 키스 세리머니를 한 사람도 아니거니와 명실상부한 테니스의 황제답게 흠잡을 데 없는 플레이를 보여주었잖아. 아직 나이 마흔도 안 됐는데, 갱년기가 찾아온 것도 아닐 테고.”

생각이 쉽게 정리되지 않더군요. `2018 호주 오픈 남자단식 결승전'은 183분의 명승부였습니다. 타이 브레이크(tie break)까지 갔던 2세트를 이겼던 칠리치가 마지막 5세트에서 몇 번의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면, 경기의 결과는 뒤집어졌을지도 몰랐죠.

경기를 생중계하던 캐스트들의 말을 주워 담는 맛도 괜찮았습니다. “자신의 페이스를 유지하고 있군요. 상대방의 범실(unforced errors)을 유도했어요. 어떻게든 상대방을 뛰게 만들면서 스트로크를 구사해야 합니다. 리턴이 살아나고 있어요. 좋은 포인트예요. 현대 테니스는 각도 싸움입니다. 각도 깊은 서브였어요. 안정적인 경기 운영을 보여주고 있군요. 필요한 때 랠리를 끌고 가야 합니다. 브레이크 포인트 때 게임을 가져가야만 합니다. 공을 봐야 하는데 상대방의 움직임을 보다가 실수를 했어요. 상대방의 길을 다 읽고 있어요. 범실 싸움이에요. 한 템포 빠른 리턴을 했어요. 자신의 서브 게임은 간결하게 하고 리턴 게임은 공격적으로 하니까, 쉽게 따고 어렵게 잃는 겁니다. 리턴 자체도 공이 라인을 타고 다니네요. 강력한 패싱입니다. 결정구를 날려야 합니다. 첫 번째 서브 성공률이 중요합니다. 세트 포인트 기회를 못 잡은 어이없는 실수입니다. 가장 중요한 때 포인트를 쉽게 주는군요. 절대 포기하지 않는 선수예요. 상대방을 압박하고 있어요. 스트로크의 어려움을 서브 한 방으로 해결하는군요. 어려운 공을 더 어렵게 만들어 보내는군요. 자학하는 모습을 보이는 건 도움이 안 되죠. 발리 플레이로 끊어버립니다. 멘탈이 강한 선수죠. 아무리 집중력이 강하다 해도, 그도 사람인지라 흔들릴 때가 있죠. 탄력 받고 치고 올라가고 있어요. 좋은 무게 중심에서 나오는 기동력입니다.”

테니스 용어와 규칙을 잘 모르는 분들의 양해를 구합니다. 그래도 제가 비교적 자세하게 캐스트들의 말을 옮긴 뜻은 아실 겁니다. 경기의 흐름을 찬찬히 되짚어보세요. 페더러와 칠리치의 경기가 마치 인생의 축소판 같지 않은가요? 페더러는 경기를 주도했습니다. 자신의 페이스를 지켰고, 각도 깊은 공이 어떤 것인가를 보여주었고, 상대방의 움직임을 정확하게 읽었고, 기회를 놓치지 않고 결정 짓는 공을 날렸고, 압박 플레이의 정수를 보여주었고, 라켓과 한 몸처럼 움직였어요. 그런데 왜 무너지지 않았던 페더러가 눈물을 펑펑 쏟았을까요? `나이는 문제가 안 돼. 그건 단지 숫자일 뿐이야(Age is not an issue. It's just a number)'라고 적힌 페더러가 들고 있던 우승 기념 셔츠의 문구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걸까요? 요즘 걸핏하면 울보가 되는 제가 묻습니다.



/에세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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