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전화번호 자릿수는 ○○○○-○○○○ 일까
왜 전화번호 자릿수는 ○○○○-○○○○ 일까
  • 김태선 교감<충북과학고>
  • 승인 2018.02.07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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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이 들려주는 과학이야기
▲ 김태선 교감

수업시간 짧은 휴식시간이나 점심을 위해 줄 서 있을 때 아이들은 그 시간에도 수첩을 손에 들고 영어단어를 외우는 모습을 본다. 애처롭기도 한 그 모습을 보면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흘러가는 규칙적인 시간의 흐름을 붙잡고 싶었던 시절이 있었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이 들수록 새로운 정보를 기억하는 능력이 예전 같지 못함을 느낄 때가 많다.

경험한 것을 몇 초 동안 의식 속에 유지해두는 것을 단기기억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전화번호를 처음 듣고 바로 버튼을 누르는 동안 유지되는 것이 단기기억에 의한 것이다. 분야마다 매직 넘버라고 부르는 숫자가 있기 마련이지만 인지과학에서 매직 넘버라고 할 때는 조지 밀러가 제시한 `7 ± 2'원칙을 의미한다. 즉 인간의 두뇌가 동시에 수용할 수 있는 정보의 수가 5~9개로 제한된다고 보는 이론이다.

1959년 조지 밀러 교수는 인간이 기억할 수 있는 용량이 얼마나 되는지 알아보고자 여러 가지 실험을 했다. 그 중 기억 범위를 측정하는 실험에서 일련의 정보를 알려주고 즉시 다시 기억해낼 수 있는 최대량이 얼마인지를 측정했는데 대부분 젊은이들이 7개 정도를 기억할 수 있음을 알아냈다. 사람에 따라 나이에 따라 다룰 수 있는 정보 능력의 개수 차이를 반영해 2개 적은 5개에서, 2개 많은 9개까지를 인간의 단기 기억 용량으로 보았다.

이처럼 기억해낼 때 각각의 정보를 구분해서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몇 개씩 묶어서 덩어리로 인식하는 방식을 사용하는 것이 쉽다는 것을 알아냈다. 예를 들어 숫자를 기억할 때 1, 2, 3, 4, 5, 6, 7로 기억하는 것보다 123-4567로 서너 개씩 분리해 덩어리로 기억하기 더 쉽다. 이런 점을 이용한 것은 실생활에서 찾아볼 수 있다. 전화번호는 010-○○○○-○○○○ 형식으로 되어 있고 옛날 우편번호는 ○○○-○○○ 형식으로 돼 있고 오늘날 도로명 주소의 우편번호도 ○○○○○ 형식이다. 지속 시간이 짧은 단기 기억에 의미를 부여하거나 반복하여 읽는 과정을 통해 정보처리가 쉽도록 덩어리로 묶는 것을 청크(chunk)화 한다고 한다.

1990년대 들어와 밀러의 연구가 잘못됐다고 반박하는 연구 논문도 있다. 기억용량이 7개가 아니라 4개라고 보는 논문도 있고(Baddeley의 연구), 3~5개로 보는 논문도 있다(Cowan의 연구). 어쨌든 인간의 단기 기억용량에 대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사람이 단기로 기억하고 처리할 수 있는 정보의 개수가 매우 적다. 우리는 무의미한 숫자들을 의미 있는 덩어리로 연결해 장기 기억할 수 있는 단계로 넘기고자 노력한다. 이런 점을 이용해 소비자의 소비 심리를 자극하는 기억을 무의식 속에 심기도 한다. 18초 정도 저장됐다가 소멸하는 단기 기억의 정보를 소비자에게 지속적으로 노출되도록 하여 장기 기억으로 저장하도록 설득하는 것이 바로 광고이다. 혹자들은 이 광고를 `15초의 미학'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자고 일어날 때마다 수많은 정보가 지생산되고 우리 곁에 잠깐 머물렀다 사라진다. 살아 숨 쉬는 모든 것이 정보가 되는 세상이다. 이러한 많은 정보의 홍수 속에서 의미를 찾고 규칙을 찾아 빅 데이터를 효과적으로 활용하고자 노력하는 의미 청크화 작업이 우리 두뇌 속에서는 예전부터 이미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는 점이 놀랍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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