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갑지 않은 출판기념회
달갑지 않은 출판기념회
  • 김금란 기자
  • 승인 2018.02.06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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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한 사람이 살아온 인생을 우리는 흔히 박물관으로 비유한다.

파란만장한 삶을 살지 않았어도 인간으로 태어나 일생을 산다는 것만으로도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위인이나 저명인사들의 자서전을 읽는 이유도 범상치 않은 이들의 삶을 엿보고 싶어서다. 하지만 궁금하지도 않은 이들의 삶을 접할 때가 있다. 선거철 우후죽순 열리는 출판기념회가 바로 그렇다.

6·13 전국 동시지방선거를 4개월여 남긴 상황에서 선거 출마 예상자들의 출판기념회 소식이 들려온다.

충북에서 선거 출마자만 수백 명에 이를 것이다.

2014년 선거 당시 충북의 후보 등록 인원은 도지사 3명, 교육감 4명, 시장·군수 37명, 도의원 74명, 시·군의원 261명 등 379명(비례대표 미포함)에 이른다.

얼굴도 알리고 공개적으로 선거 자금을 모으는 합법적인 홍보 수단인 출판기념회를 두고 출마자들은 개최 여부를 두고 저울질하지 않는다. 욕먹을 줄 알면서도 행사를 통해 많게는 수억 원의 선거자금을 확보할 수 있는 데 남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다. 하지만 초대장을 받는 이들의 입장은 다르다.

선거에 맞춰 열리는 출판기념회는 안 가자니 찝찝하고 가자니 발걸음이 무겁다.

지난 3일 교육감 선거 출마를 선언한 심의보 충청대 교수가 출판기념회를 했다. 설날이 지나면 황신모 전 청주대 총장도, 김병우 현 충북교육감도 출판기념회를 계획하고 있다고 알려지면서 도내 교육공무원들의 마음이 편치않다.

특히 현직이라는 프리미엄을 안고 있는 김병우 교육감이 출판기념회를 준비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면서 교육청 안팎에서는 벌써부터 책값으로 신사임당 몇 장이 기본이라는 말이 돌고 있는 것을 보면 공무원들의 심적 부담이 크긴 한가 보다.

도지사, 시장, 군수 선거도 마찬가지다. 기관장을 뽑는 선거철엔 공무원들은 가시방석에 앉은 기분이다.

누가 당선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당선 결과에 따라 자신의 인생을 가늠할 인사권을 쥔 출판기념회에 얼굴 도장을 찍는 보험을 들지를 고민하는 상황이 현재 우리 사회의 선거 모습이다.

최근 만난 한 교육계 인사는 지난 2014년 치러진 교육감 선거 얘기를 꺼냈다.

초·중등 출신 후보자 5명이 출마한 당시 그는 출사표를 던진 출판기념회마다 얼굴을 비췄다.

이유는 찍히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는 “인사권을 쥐고 있는 교육감 선거에 누가 당선될지 모르는데 찍히지 않기 위해 내키지 않는 자리라도 갈 수밖에 없었다”며 “보험 드는 셈치고 책값으로만 30~40만원을 지출했는데 돈 쓰고도 기분이 좋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공무원들이 출판기념회 참석 여부를 고민하는 것은 공직 생활을 하는 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인식하기 때문이다.

선거 결과에 상관없이 당선자가 인사를 단행할 때 원칙과 규정, 근무 평점으로 적재적소에 인재를 배치한다고 생각했다면 공무원들이 행사장 가는 것을 고민조차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어디 그런가.

선거가 끝나면 당선자들은 코드인사, 최측근 인사, 내사람 심기라는 지적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실제로 선거 캠프에서 활동했거나 이름을 올린 사람들이 한 자리씩 꿰찬 모습을 수없이 봐온 상황에서 출판기념회는 가도 후회, 안가도 후회하는 자리가 됐다.

책값을 내는 사람의 손도 부끄럽고 책값을 받는 출마자의 손도 떳떳하지 못한 이런 선거를 언제까지 치러야 할지 고민할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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