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과 노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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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진희 기자
  • 승인 2018.02.06 20: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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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 공진희 부장(진천주재)

서아프리카의 신(神) 에드슈는 양쪽 밭에서 일하는 두 농부를 골려주기로 마음먹고 한쪽은 붉은색, 다른 한쪽은 흰색, 앞은 초록색, 뒤는 검은색 모자를 썼다.

평소에 친하게 지내던 두 농부는 집과 마을로 돌아갔는데 한 농부가 다른 농부에게 `자네 오늘 흰 모자를 쓰고 지나가던 노인을 보았는가?'하고 물었다.

그러자 그 농부는 `무슨 소린가, 모자는 붉은색이었는데…'하고 우겼다.

마침내 이 말씨름이 우격다짐으로 발전했다.

서로 칼을 빼들고 으르렁거리던 두 사람이 이웃사람들 손에 이끌려 재판을 받기 위해 추장 앞으로 갔다.

에드슈는 재판의 방청객 틈에 끼어 있었다.

추장이 어느 농부의 말이 맞는지 몰라 전전긍긍하자 에드슈는 자신이 장난쳤음을 시인한 다음 모자를 보여주며 이렇게 말했다.

`둘은 싸울 수밖에 없었지, 내가 그렇게 만들었으니까.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남들을 싸우게 하는 것이니라'(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 - 조셉 캠벨)

6·13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의 발걸음이 빨라지고 있다.

강남 아줌마의 국정농단에 분개하며 이게 나라냐고 한탄하던 유권자들도 이제는 제대로 된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며 벼르고 있다.

이번 선거는 정치인이 아닌 정치모리배들이 돈과 권력, 기회를 선점한 광범위한 지배력으로 유권자들의 눈과 귀를 멀게 하고 세뇌시키며 자신들의 열렬한 지지자로 만들어 온 전략이 상식과 이성을 갖춘 성숙한 시민의식 앞에 무릎 꿇는 역사의 전진을 보여줄 것이다.

그리하여 `정치란 분쟁거리를 찾아내는 기술이다. 도처에서 분쟁거리를 찾아내서 엉터리 진단을 내리고 엉뚱한 대책을 시행한다'는 그루초 막스의 재기발랄한 통찰이 이 땅에서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해 줄 것이다.

이 이야기가 하나마나한 이야기라고?

맞는 말이다.

희망의 빛이 보이지 않는 절망의 시기에도 산업화와 민주화를 함께 일궈 내고, 지난 겨울 이 나라의 주인은 국민이라는 당연한 사실을 온몸으로 증명해 낸 위대한 우리 국민에게 이 이야기는 사족(蛇足)에 불과할 따름이다.

그럼에도 특히 선거철만 되면 이념과 지역, 계층과 세대 간 갈등을 부추기며 낄낄대는 에드슈의 장난질에 걸려들어 화목한 이웃끼리 칼까지 빼어 들며 싸우는 우리의 자화상과 마주하곤 한다.

아직도 에드슈의 마법에서 깨어나지 못한 채 보고 싶은 대로 보고, 믿고 싶은 대로 믿는 어른들에게 우리 아이들이 `보이는 대로'소리친다.

“임금님이 발가벗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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