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 · 평화에 조건은 필요 없다
평창 · 평화에 조건은 필요 없다
  • 정규호<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 승인 2018.02.06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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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단상
▲ 정규호

`예외 없는 규칙은 없다(There is no rule but has exceptions)`는 서양 격언이 있다. 어찌 보면 원칙(규칙)을 무시해도 좋다는 편리한 발상일 수 있겠으나, 역설적으로 규칙을 초월한 사고방식이 역사의 발전을 가져온 결과는 너무 많다.

평창 동계올림픽이 사실상 시작된 것과 다름없다. 오는 9일이 정식 개막식이 열리는 날이긴 하나 이미 올림픽의 열기는 국내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느껴진다.

그 올림픽에서 우리는 몇 차례 `예외'를 만나야 했다. 갑자기 태도를 바꿔 평창 동계올림픽에 참가하겠다는 김정은의 신년사 이후 북한은 여러 가지 예외의 대상이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남과 북의 갈등 외에도, 그동안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했던 남한에서의 세대와 계층 간 생각의 깊은 차이를 새삼 확인했다.

남북한 문화 예술의 교류와 한반도기 아래 동시 입장 등 모처럼의 하나 됨이 모두에게 적용되는 마냥 기쁜 일이 아님을 우리는 비로소 알게 됐다. 사실 나처럼 전후 세대는 `빨갱이'이거나 마빡에 뿔이 돋은 혐오스러운 북한군의 모습이 알게 모르게 각인되는 반공교육을 집중적으로 받아 왔다. 그러다가 황석영의 방북기 <거기 사람이 살고 있었네>를 필두로 깨어지기 시작된 북한이라는 금기는 한민족과 동포라는 동일 감정으로 빠르게 전이되는 뒤늦은 깨달음도 있었다.

그러나 평창을 맞이하면서 우리는 남북 단일팀으로 인해 선량한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선수가 외부 요인에 의해 공들여온 노력이 수포로 돌아갈 수 있다는 기회의 상실을 우려한다. 그 우려에는 왜 하필이면 `여자'아이스하키 팀이어야 하는가라는 젠더의 차별성에 있고, “어차피 메달권에 있지 않다”는 국무총리의 발언에 따른 소위 일들 만능주의와 죽어라 노력해도 취업에 들러리를 설 수밖에 없는 평범한 젊은이들의 상대적 박탈감도 있다.

우리 젊은이들의 상처가 이토록 깊고, 우리 청년들의 평등과 평화에 대한 갈망이 이처럼 고민이었음을 정부만, 아니 기성세대만 몰랐던 것이다.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는 문재인 정부의 원칙을 내세우지 않더라도 남북의 소통이 차단되고 적대적 강도가 지속적으로 높아진 지난 9년의 역사가 만들어 놓은 국민적 사고의 후퇴는 아닌지 씁쓸하다.

평화는 인류 모두에게 균등하게 혜택 되어야 한다. 역설적으로 말하면 `평화'라는 인류 공영의 가치는 예외 없이 적용되어야 하는 규칙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화라는 최종 목표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평창올림픽의 경우를 훨씬 뛰어넘는 파격적 예외가 더 많이 필요할 것이다.

갖가지 대북 규제는 `평화'를 전제로 만들어졌다. 북한의 핵무기 개발에 따른 전쟁, 혹은 미국에 대한 직접 공격의 우려가 유엔 대북제재 결의의 직접적 이유이고, 만경봉호의 입항이 논란이 되는 것 역시 천안함 사건에서 비롯된 5.24 조치가 근거가 되는 것이다.

금지하고 막으니까 자꾸만 존재의 가치를 과시하려는, 그리하여 국제사회에서 고립되지 않으려는 북한의 발버둥으로 표현되는 일이 지금 한반도를 둘러싼 갈등의 속보이는 단면이다. 왕따를 당하지 않고 싶다는 조바심을 핵무기 개발이라는 인류 공멸의 위험으로 시도하는 북한의 처지는 처량하다. 게다가 그런 앙탈을 `코피'운운하며 사사건건 시비를 거는 트럼프 행정부의 모습 또한 엉뚱하다.

평창은 시작되었다. 6.25 이후 지구상에 남은 마지막 정전과 비무장 지대 인근에서 벌어지는 올림픽, 그 평화의 제전은 온갖 억압과 위기, 그리고 으름장에도, 인류가 노력하면 세상이 얼마나 아름답고 평화로울 수 있을지 보여줄 수 있는 위대한 새 역사가 될 것이다.

그리하여 평창은 영원할 것이며, 평창에서 비롯된 인류의 평화에 대한 염원이 그 이후로도 오랫동안 지속되는 더 많은 `예외'가 규칙으로 자리 잡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또 바란다. 평화에 무슨 조건이 필요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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