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춘 지나는 길목에서
입춘 지나는 길목에서
  • 박명애<수필가>
  • 승인 2018.02.06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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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 박명애

북극 한파가 이어지며 세상이 꽁꽁 얼어붙었다. 바람 길 지날 때면 귀를 에는 칼바람에 정신마저 혼미해질 지경이다. 친구는 사무실 보일러가 동파되었다고, 서비스 업체도 일이 밀려 바로 수리가 불가능하다고 한걱정을 했다. 생명을 가진 모든 것들이 숨죽인 채 지루한 시간을 고단하게 견디는 풍경이 애잔하다. 새도 고양이도 그리고 사람도.

그래서일까. 엄동설한이라도 절기 맞춰 찾아온 입춘이 반갑기만 하다. 몸은 무겁고 게으름 병이 도져 만사가 느리게 흘러가는 일상에 살짝 긴장감이 끼어든다. 추위를 핑계로 미뤄두었던 여러 가지 일들을 정리하고 새로운 계획들을 살핀다. 입춘첩 써 주던 행사장 허연 입김 아래 붓끝에서 풀려나오던 기원들이 가슴을 설레게 한다.

사람들은 봄이 시작되니 크게 길하고 경사스러운 일이 많기를 기원하는 입춘대길 건양다경(立春大吉 建陽多慶), 산처럼 오래 살고 바다처럼 재물이 쌓이기를 비는 수여산 부여해(壽如山 富如海), 재앙은 가고 복이 오라는 거천재 래백복(去千災 來百福), 부모님의 장수를 빌고 자식이 번영하길 바라는 부모천년수 자손만대영(父母千年壽 子孫萬代榮) 등 다양한 입춘첩들을 써 붙이고 새날에 대한 희망을 품는다.

여러 문구 중 재종춘설소 복축하운흥 (災從春雪消 福逐夏雲興)이란 입춘첩이 마음에 들어 졸필로 그려본다. 재난은 봄눈처럼 사라지고 행복은 구름처럼 일어나라는 기원이다. 예기치 않은 대형 참사들이 발생하며 많은 희생을 치러야 했기에 새봄에는 더 이상 재난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뼈아픈 반성과 총체적 점검이 진행되는 와중에도 일각에서는 진심 어린 애도와 해결방안에 대한 고민보다 현 정권에서 유독 화재 발생 빈도수가 높다며 불안감을 조성하고 비판하기에 바쁘니 씁쓸하기 짝이 없다.

작년 입춘 때는 촛불이 광장을 뜨겁게 달구었었다. 꽁꽁 언 손들이 모여 부패한 기득권층의 특권이 횡행하는 사회를 쇄신하고 공정하고 평등한 사회를 만들기 위하여 한 목소리로 희망을 기원했다. 새해. 나라를 바로 세우고자 하는 염원들은 많은 것을 변화시킨 듯 느껴진다. 그러나 개혁의 속도는 더디고 여전히 정치권은 서로를 향한 비난으로 허송세월하며 구습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그래도 칼바람 끝에 봄기운 스며오듯 혼란스럽고 고통스러운 시간이 지나면 모두가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그날이 오리라 믿고 싶다.

다시 찾아온 입춘. 많은 사람이 봄을 기다리며 꿈꾸고 희망을 기원하는 이월. 평범한 사람들이 바라는 세상은 정치에 몸담은 이들의 꿈과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을 한다. 그들은 어떤 입춘첩을 붙였을까. 정치에 첫발을 디디며 품었던 소망은 순수하고 맑았으려니, 권력욕에 흐려진 마음 비우고 진정한 정치인으로 거듭나 화합으로 건강한 나라 만들기에 동참했으면 좋겠다.

입춘 절기를 맞아 마음을 바로 세우고 삶을 돌아보던 조상의 지혜에 새삼 감사하다. 고추바람 뒤 올 봄날의 훈풍을 기다리며 모두 힘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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