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재에 올라
새재에 올라
  • 김태봉<서원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 승인 2018.02.05 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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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봉 교수의 한시이야기
▲ 김태봉

누군가를 절실히 기다리는 사람이라면, 수시로 문밖을 내다보거나, 아예 문밖으로 나가보거나, 더 심한 경우는 높은 곳에 올라가 먼 곳을 내다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바깥출입이 꺼려지는 한겨울, 그것도 새벽에 높은 곳에 오른다는 것은 그만큼 절실한 기다림이 있다는 뜻에 다름 아니다. 조선(朝鮮)의 시인 유호인(兪好仁)은 대체 무엇을 기다리기에, 겨울 새벽 찬 바람을 무릅쓰고 새재에 올랐던 것일까?

새재에 올라(登鳥嶺)

凌晨登雪嶺(능신등설령) 이른 새벽에 눈 내린 고개에 오르니
春意正濛濛(춘의정몽몽) 봄뜻이 참으로 흐릿하구나
北望君臣隔(북망군신격) 북으로 바라보니 군신이 막히었고
南來母子同(남래모자동) 남으로 오니 어미 자식이 함께하네
蒼茫迷宿霧(창망미숙무) 흐릿한 밤 묵은 안개에 길은 보이지 않고
迢遞倚層空(초체의층공) 높고 험한 층층 하늘에 기대서네
更欲裁書札(갱욕재서찰) 다시 편지를 쓰려 하나니
愁邊有北鴻(수변유북홍) 시름 젖은 변방에 북으로 가는 기러기 있으 려나?


한겨울 이른 새벽은 겨울 중에서도 가장 추운 시간대이다. 따뜻한 이불 속에서 잠들어 있어야 할 시간에 시인은 잠자리를 털고 일어나, 집 밖으로 나와 어디론가 향한다. 시인이 향한 곳은 다름 아닌 새재라 불리는 고갯마루였다. 지금이야 새재가 별거 아니게 느껴지지만, 조선시대만 해도 그곳은 심심산골에 적막하기 그지없는 곳으로 사람 왕래가 아주 드물었다. 그리고 그 일대에서는 가장 높은 곳이기도 하였다. 그곳은 경상도 쪽에서 한양으로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곳이기도 하였다.

이런 새재에 시인은 왜 겨울 새벽에 오른 것일까? 시인은 무언가를 절실히 기다리고 있었고, 기다리고 있기만 하는 상황이 너무나 답답하여 근처 가장 높은 곳, 한양으로 통하는 길목을 찾았던 것이다. 그런데 그곳에서도 시인은 기다림의 답답함을 달랠 수는 없었다. 봄이 올 기색도 아직 보이지 않고, 한양으로 가는 길도 안개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다. 편지를 써 보려 하지만 이것마저 쉽지 않다. 편지를 물고 갈 기러기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높은 곳에 오르면 탁 트인 맛에 답답한 마음을 해소할 수 있다. 기다림에 지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경우 주변 높은 곳에 올라가 낮은 곳을 내다보는 것으로 기다림의 숙원이 풀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도 올라야 하는 것은 그렇게 함으로써 스스로를 위로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서원대학교 중국어과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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