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서는 어디로
진정서는 어디로
  • 이재경 기자
  • 승인 2018.02.05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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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 이재경 국장(천안)

# 서지현 검사가 어제 대통령에게 뜻밖의 사과를 받았다. 문재인 대통령은 5일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지난주 현직 검사에 의해 검찰내 성추행 사건이 벌어져 국민들의 충격과 분노가 크다”며 “그동안 당사자가 겪었을 고통에 위로와 격려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대통령의 이날 사과는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이례적이다. 공공 조직내에서 성추행, 성폭력 사건은 과거 비일비재 했다. 서 검사가 몸담고 있는 검찰 조직에서도 법무부에서도 마찬가지다. 헌데 이번엔 대통령이 직접 나서 사과를 했다.

그만큼 이번 일이 위중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날 대통령의 어조는 단호했다. “법 질서를 수호해야 할 검찰조직에서 상급자에 의한 성추행이 발생했는데도 조사나 적절한 조치가 취해지지 않았고, 오히려 피해자에게 보복성 인사 조치가 내려졌다는 의혹이 나온다”면서 “결코 묵과할 수 없는 매우 엄중한 사안”이라고 말했다.

공공기관장들을 향해 강한 경고성 메시지도 보냈다. “(우리 사회의) 성희롱성폭력은 한 개인의 일탈행위가 아니라 성차별적 사회구조와 문화때문에 발생한다”면서 “공공기관부터 먼저 달라지고 모범을 보여야한다”고 지적했다. 또 “공공기관에서 (성폭력 사건의) 조직적 은폐나 2차 피해가 발생할 경우 가해자 뿐만이 아니라 부서장까지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지난해 1~7월 사이 천안시체육회에서 직장내 성추행 사건이 발생했다. 여직원들이 수 개월 동안 식당, 노래방, 사무실, 운동장 등 곳곳에서 견디기 힘든 일들을 당했다. 가해자는 체육회의 상임부회장과 사무국장. 섣불리 저항하기 힘든 조직 내 최고 `높은 분'들이었다. 참다못한 직원들이 만든 진정서가 천안시에 접수됐다. 그런데 이 진정서는 정상적으로 처리되지 않았다. 천안시장을 겸직하는 구본영 체육회장에게 전달돼 체육회에서 즉시 조사가 이뤄져야 했으나 가해자들의 사표만 수리되고 없던 일이 돼버렸다.

천안시체육회는 2017년 1월 임직원 성 관련 위법행위자 징계 규정을 만들었다.

임직원이 성폭력, 성희롱, 성매매를 한 경우 징계위원회를 열어 징계를 하도록 한 규정이다. 징계 기준과 그 처벌 기준을 보면 꽤 강도가 세다. 성폭력의 경우 비위의 정도가 약해도 파면을 하게 돼있고, 성희롱도 해임이 원칙이다. 재정적 벌칙도 따른다. 파면당했을 경우 퇴직 급여의 50%를 받지못한다. 강등의 징계를 받으면 1계급 강등과 함께 3개월간 직무에 종사하지 못한다. 이 규정은 물론 직장내 성범죄 뿌리뽑기 위해 만들었다. 그러나 체육회는 당시 성희롱 가해자들에게 이 규정을 적용하지 못했다. 회장이 의원면직 처리를 해줬기 때문이다. 회장인 천안시장은 가해자로 지목된 2명의 사표 이유를 묻는 질문에 “일신상의 이유로 사직을 원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성추행 피해 진정서를 보고받았느냐는 질문에도 모른다고 답했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체육회장에게 전달됐어야 할 진정서는 어디로 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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