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드 유’ 운동이 더 절실한 때
‘위드 유’ 운동이 더 절실한 때
  • 권혁두 기자
  • 승인 2018.02.04 19: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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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 권혁두 국장

최근 캐나다 국가(國歌)의 가사가 수정됐습니다. 한 단어가 바뀌었습니다. 국가의 두 번째 소절인 `아들들의 명령대로'가 `모두의 명령대로'로 바뀌었습니다. 아들들(sons)을 모두(all)로 바꾼 이유를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습니다. 국민 전체를 포괄하고 상징해야 할 국가가 남성만을 강조한 것은 공정하지 않다는 여성들의 반발 때문입니다.

여성들의 반대는 타당했지만, 국가가 개사되기 까지 과정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가사를 바꾸려는 법안 발의는 캐나다 정부가 국가를 공식 채택한 1980년부터 시작됐습니다. 진보적 의원들에 의해 지금까지 12차례나 의회에 법안이 제출됐지만 번번이 하원에서 부결됐습니다. 40년이 지나서야, 그것도 13번째 발의 만에 성사됐습니다. 이번 법안 처리 과정에서도 보수당 의원들은 반대의 뜻으로 표결에 불참했습니다.

그렇다고 캐나다가 성 불평등을 문제 삼을 정도로 성 차별적인 나라는 아닙니다. 장관급 각료 30명 중 절반을 여성으로 임명한 나라입니다. 우리나라와 비교하면 `천양지차'지요. 캐나다 정부가 국가의 가사를 바로잡는데 소극적이었던 이유 중 하나는 개사에 대한 여론이 크게 우호적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여론조사에서 남성들의 지지를 받지 못해 찬반이 엇비슷하게 나왔다는 얘기겠지요. 여성들과 달리 남성들은 국가에 `딸들'은 없고 `아들들'만 등장한 것이 수정해야 할 정도로 심각한 문제는 아니라고 인식하는 것입니다. 40년 만에 이뤄진 캐나다 국가 개사는 여성에 대한 우월과 차별의 인식이 남성 유전자에 깊게 뿌리내려 있고, 그래서 성 불평등 개선이 쉽지 않은 과제라는 사실을 새삼 깨우쳐 줍니다. 여성이 아니라 남성의 각성이 우선돼야 해결될 문제이니까요.

서지현 검사가 폭로한 검찰 내 성추행 사건의 파장이 각계각층으로 번지고 있습니다. 국민은 무엇보다 법무부장관 면전에서 노골적인 범죄가 자행됐고, 피해자와 가해자가 모두 검사라는 사실에 경악했습니다. 기강문란이 극에 달했던 현장에 있었던 그 장관은 조직 내에서 문제의 성추행이 보고되고 회유와 압박, 은폐의 꿍꿍이가 있었는데도 몰랐다고 하지요. 아시아나항공 여승무원들이 폭로한 박삼구 회장의 해괴한 월례행사는 말을 잃게 했습니다.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은 여직원들만 불러 골프대회를 열고있는 데, 참가하는 직원들은 `박현주의 삼천궁녀'로 불린다고 하지요.

앞으로 어떤 기가막힌 사례가 또 터져나올 지 걱정마저 되는 상황입니다.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 재발방지 대책 수립은 우리나라에서 너무도 식상한 단어들이 돼 버렸습니다. 일이 터질 때마다 정권과 언론, 정치판에서 기계적이고 단계적으로 읊조리는 구호입니다. 그러나 어느 한 가지라도 제대로 매조지를 지은 적은 없었지요. 성추행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20년 전 서울대에서 발생한 교수의 조교 성희롱 사건으로 여론이 들끓자 정부는 재발방지를 약속하고 직장마다 성희롱 예방교육을 의무화하는 등 법석을 떨었습니다.

이번 검찰 성추행 사태는 당시의 방책들이 공염불에 그쳤음을 확신케 합니다. 불과 2년 전 문학계와 영화계에서도 성추행·성폭행 문제가 발생해 장안이 떠들썩했지만 이제는 모두의 기억에서 사라져 태고적 얘기가 돼버렸습니다. 지난해도 호식이치킨'과 `한샘'에서 성추행·성폭행 사건이 발생했지요.

이번에도 돌아가는 추세를 보면 또 `흐지부지'로 끝나지 않을까 걱정이 앞섭니다. 박상기 법무장관은 서 검사 성추행 사건을 전혀 몰랐다고 했다가 나중에 말을 바꾸고 사과까지 했습니다. 덮어버리려 했다는 의혹을 피해가기 어렵게 됐습니다. 법무부에 `성범죄 대책위원회'를 발족하고 발본색원을 약속했지만 이미 장관의 신뢰는 땅에 떨어졌습니다.

해서 `미투(Me too)'운동의 성패는 법무장관이 아니라 대한민국 남성들에게 달려있다고 생각합니다. 대통령 되겠다고 나선 후보가 집에서 설거지하느냐는 질문에 “남녀가 할 일은 하늘이 정해 놓은 건데, 여자가 할 일을 남자에게 시키면 안 된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나라의 남성들 말입니다. 나흘에 1명꼴로 애인에게 여성이 살해당하는 나라, 데이트 경험이 있는 여성 80%가 데이트폭력을 겪는다는 나라의 남성이 할 일은 우선 수치심을 갖는 것이겠지요. 다음에는 아주 냉정한 시선으로 자신을 돌아보는 것입니다. 남성들이 여성의 고통에 공감하고 힘을 보태는 `위드 유(With you)'운동이 더 절실한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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