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의 시간
장미의 시간
  • 김경순<수필가>
  • 승인 2018.01.30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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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문앞에서
▲ 김경순

꽤 오래전 유치원을 다니던 아들 녀석의 그림이 생각난다. 그 그림은 보기에도 또래의 아이들에 비해 형편없는 그림이었다. 하지만 아이는 나무 몇 개 얹어 놓은 것 같은 그림에 대한 설명이 장황했다. 그 모습이 얼마나 귀엽고 우습던지 참을 수가 없었다.

만약 나를 포함한 어른들이 나뭇가지 몇 개 얹어 놓은 그림이나, 아니면 코끼리를 소화시키고 있는 보아 구렁이를 이해해 주었더라면, 내 아이와, 어린 생텍쥐페리는 어른이 된 후에 화가가 되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해 보았다. 하지만 그렇게 되었다면 생텍쥐페리는 아마도 어린왕자를 만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집 한 채 크기의 별에서 살고 있는 어린왕자와의 만남은 생텍쥐페리에게는 신비롭고 소중한 경험이었다. 왜냐하면 어린 왕자는 코끼리를 삼키고 있는 보아 구렁이를 단박에 알아맞히었기 때문이다. 그것뿐만이 아니라 아무렇게나 그려버린 작은 상자 속에 양이 살고 있다는 말에도 어린 왕자는 환하게 빛나는 눈으로 대답해 주는 친구였다. 하지만 어린왕자에게는 언제나 걱정거리가 있었다. 자신의 별에 두고 온 꽃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그 꽃은 아주 까다롭고 자만심으로 가득했다. 하지만 그 꽃도 어린 왕자가 그 별을 떠나고 나서야 자신이 어린 왕자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알 수 있었다.

어린 왕자는 일거리도 찾고 견문도 넓히기 위해 여러 별들을 여행했다. 어린왕자가 친구로 삼고 싶은 사람을 만난 것은 다섯 번째로 방문한 별에서였다. 그곳에는 온종일 가로등을 켜고 끄는 일을 하는 점등인이 살고 있었다. 그간에 만났던 왕이나 허영쟁이, 상인은 자신의 일로 바쁘지만 점등인 만은 남을 위해 일을 한다는 점에서 친근함을 느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간혹 남을 위해 사는 사람을 보고 어리석다고 비웃는 사람을 본다. 자신의 이익이 앞서는 사람의 편에서 본다면 분명 그 사람은 웃음거리로밖에 보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때로는 그런 어리석은 사람이 있어 이 세상이 따뜻한 것은 아닐까.

어린 왕자는 그 뒤로 다니지도 않으면서 연구한다는 지리학자가 살고 있는 별을 거쳐 일곱 번째로 지구에 오게 된다. 그곳에서 어린 왕자는 자신의 꽃과 비슷한 꽃인 장미꽃 정원을 만난다. 오천 송이나 되는 장미꽃을 보며 왕자는 자신의 꽃이 이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꽃이라고 생각했던 것에 실망하고 만다.

하지만 잠시 후 여우를 만나 자신의 꽃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닫는다. 여우는 어린왕자의 장미꽃은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것이라고 했다. 또한 가장 소중한 것은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것이며 그렇게 소중한 것은 자신의 장미를 위하여 잃어버린 시간 때문이라는 진리를 어린왕자는 여우에게서 선물로 받는다.

가만 생각 해 보면 우리가 소중하게 느껴지는 것은 사람이건, 물건이건 정말 자신이 그만큼 마음을 주고 아끼며 시간을 투자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책 마지막 장을 덮으며 어린 왕자가 지구를 떠나기 전 생텍쥐페리에게 한 말이 가슴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사람들이 보는 별들은 모두 같지가 않아. 여행자에게는 안내인이고, 학자에게는 풀기 힘든 문제이기도 하고, 상인에게는 금같이 보일 거야. 그러나 이 모든 별은 말이 없어. 그렇지만 아저씨는 누구도 갖지 못한 그런 별들을 갖게 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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