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공방보다 제도와 법률 정비부터
정치공방보다 제도와 법률 정비부터
  • 연지민 기자
  • 승인 2018.01.29 20: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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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 연지민 부국장

안전 불감증이 대형 화재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12월 21일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로 29명이 숨진 뒤 한달 만에 경남 밀양시 세종병원에서 발생한 화재로 39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부지불식간에 일어난 화재를 국민 모두 참담한 심정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잇따라 발생한 대형 화재를 보면 경제성장에만 방점을 두고 달려온 대한민국의 민낯도 엿볼 수 있다. 특히 대형 참사의 원인을 보면 경제논리만 앞세운 건축법에서 국가정책의 결함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제천시 스포츠센터 화재 참사는 주요 원인으로 유독가스를 배출한 `드라이비트 공법'이 지목됐다. 건물 내장재로 저렴한 가격과 시공이 간편한 장점을 가지고 있는 `드라이비트'를 사용한 것이 화를 키웠다는 분석이다. 그동안 드라이비트 공법은 단열 효과가 뛰어나고 저렴한 비용, 짧은 시공 시간이 장점이지만 불이 나면 삽시간에 불길이 번지고, 유독가스 배출로 인명피해의 위험도도 높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하지만 위험성을 보완하지 않고 오히려 위험한 건축물을 양산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현재의 도심 건축물 80% 이상이 드라이비트 공법으로 지어졌다는 점이다. 화재 시 그 누구도 유독가스로부터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방증하고 있는 셈이다. 이와 관련해 “건축물을 시공함에 있어서 경제적인 측면만을 강조하다 보니 우리 사회가 지금 당장 드는 건축비의 절감이냐, 앞으로 발생할지도 모르는 막대한 사회적인 비용의 지불을 놓고 도박을 하고 있는 것”이라는 전문가의 견해에 반박의 여지가 없다.

그런가 하면 밀양 세종병원의 경우 방화문과 스프링클러가 미설치돼 참사를 키웠다는 분석이다. 실제 건축법상 5층 이하의 저층건물은 방화문 설치도, 스프링클러 설치도 의무사항이 아니어서 대형참사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30만원이면 설치할 수 있는 방화문이지만 건축 면적을 늘려 이용하려는 얕은 셈법을 건축법이 오히려 부추겼다는 지적이다.

이처럼 정부의 허술한 건축법과 경제 논리를 앞세운 건축주들의 드라이비트 공법 선호로 국민의 안전은 `설마'라는 시험대에 올려졌고, 여기에 10층 이하의 소형 건축물의 경우 스프링클러의 장착 의무까지 면제돼 화재 당시 초기대응마저 무색하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대형 사고가 터질 때마다 정치권의 네 탓 공방은 여전하다. 화재 수습과 원인 규명에 대한 대책도 세워지기 전에 내각 총사퇴를 주장하는 야당이나 전 정부의 부실로 미루려는 여당의 자세는 보기에도 민망하다. 국민의 안전을 담보로 한 정치공방과 패거리 정치싸움은 근절돼야 한다.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공세로 일관하려 하지 말고 진실성 있는 자세를 보여줘야 한다.

`자나깨나 불조심'이라는 표어가 생활 일부분처럼 자주 언급된 적이 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우리 주변에서 불조심 관련 표어는 슬그머니 꼬리를 감췄다. 건축시설이나 기계가 현대화되면서 화재의 위험성도 줄어들었고, 소방 시스템도 안정적이라고 믿었던 것이 불에 대한 경각심마저 무디게 만든 원인이다.

우리 사회에 뿌리 깊이 퍼져 있는 안전 불감증을 걷어내려면 정치권에서는 재난발생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제도와 법률을 재정비해야 한다. 제천 화재 참사 이후 국회에 제출된 소방기본법 개정안 등 5대 소방관련법을 처리하고, 화재와 재난이 대형참사가 되지 않도록 신속한 대응체계를 구축할 때 정부의 신뢰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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