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 호랑이
금강산 호랑이
  • 하은아<충북중앙도서관 사서>
  • 승인 2018.01.29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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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가 말하는 행복한 책읽기
▲ 하은아<충북중앙도서관 사서>

나는 어릴 때부터 책을 좋아했다. 친구네 집에 가서도 친구 책 읽느라 저녁 밥상이 들어오는지도 모른 체 읽곤 했다. 친구네 가족은 밥을 먹고 나는 그 옆에서 책을 보는 이상한 풍경이 종종 벌어졌다. 지금 생각해 보니 나는 매우 예의가 없는 아이였다.

그림책으로 시작된 내 독서는 동화책을 거쳐 소설, 역사서 등으로 번져나갔다.

그런데 커질수록 이상하게 조그만 삽화가 아닌 그림이 주가 되는 책은 읽지 못했다. 중학교 시절 만화책을 읽지 못한 이유도 그것이었다. 그림이 많으면 그 속에 있는 글이 들어오지 않았다. 글이 붕 떠 보여서 읽히지 않았다. 글씨로 빼곡하게 채워진 책을 보면 왠지 모르는 안정감에 행복을 느끼기까지 했다.

그림책을 다시 마주하기 시작한 것은 사서로 일한 후부터이다. 어린이 이용자에게 제공할 책을 한 권 한 권 정리하다 보니 그림과 글이 함께 읽히기 시작했다. 글 속에서 미쳐 느껴지지 않았던 감동이 그림에서 읽혔다. 그림책은 보면 볼수록 새로운 감동과 맛이 있음을 그때야 깨달았다. 마치 아이가 읽은 책을 계속 읽어달라고 때 쓰는 것처럼 반복해 읽을수록 그림에서 숨바꼭질하듯 새로운 재밋거리가 읽힌다.

도서`금강산 호랑이'는 오랫동안 전해 내려오는 설화를 바탕으로 권정생이 각색하고 정승각이 그렸다. 호랑이에 의해 아버지를 잃은 `유복'이가 원수를 갚기 위해 힘을 기르고 역경을 이겨내어 마침내 호랑이를 무찌르고 평화로운 세상을 만든 이야기다.

아이들에게 놀림 받는 유복이, 무서운 호랑이 이야기를 해주는 어머니, 무술을 연마하는 유복이의 그림이 역동적으로 그려졌다. 먹을 기반으로 그려진 그림 속에 몇 안 되는 색이 더욱 도드라져 이야기에 생동감을 준다.

특히 분홍, 보라, 노란, 하늘 등으로 표현된 유복이가 놀림 받는 장면은 철없는 아이들의 감정이 그대로 드러난다.

`금강산 호랑이'는 구전 설화인 만큼 충실하게 권선징악의 유형을 띈다. 집채만 한 호랑이를 만나고 호랑이 뱃속으로 들어가는 고난을 겪지만 그 속에서 만난 아가씨의 도움으로 호랑이 뱃속을 탈출하고 결혼까지 한다. 유복이로 인해 동화 속 세상은 평화롭게 유지될 것이다. 혼례복을 다정스레 입은 유복이와 아가씨 주변으로 예쁜 꽃들이 피어 있다. 앞으로 살아갈 삶이 꽃길이라고 말해주는 것처럼 말이다.

전래동화나 구전 설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에는 무서운 호랑이가 많이 나온다. 호랑이는 변신술을 부려 사람으로 변하여 겁을 주기도 하고 사람을 잡아먹기도 한다. 요즘 나오는 텔레비전 만화나 동화 속에는 귀여운 호랑이가 가득하다. 한글이나 숫자를 가르쳐 주기도 하고 아기들의 생활습관을 가르쳐주는 친구로 등장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자연 속에 있을 때는 두려움의 대상이었는데 동물원에 가서야 볼 수 있는 존재가 되니 친구처럼 묘사되는 호랑이가 슬프게 느껴진다. 사람들의 잣대로 동식물의 본연의 힘을 좌지우지 하는 것 같다.

오랜만에 이 책을 읽고 호랑이를 다시 생각해 보았다. 커다란 덩치를 가지고, 산세를 호령하며 포효하는 그런 호랑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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