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장군(冬將軍)의 추억
동장군(冬將軍)의 추억
  • 류충옥<수필가·청주경산초 행정실장>
  • 승인 2018.01.28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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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가는대로 붓가는대로
▲ 류충옥

5일째 연속으로 동장군(冬將軍)이 기승을 부린다. 예전엔 삼한사온이라고 하여 3일 정도 추우면 4일 정도는 따뜻해졌는데, 이상 기후 때문인지 다음 주나 되어야 기온이 올라갈 모양이다.

필자가 초등학교에 다녔던 1970년대 말에는 지금보다 날씨도 더 추웠고 눈도 더 많이 왔다. 우리 집은 음성 소이의 산 아래 시골마을 꼭대기 집이었다. 우리 집엔 우물이 있었는데 두레박으로 얼음을 깨고, 물을 길어서 사용했다. 새벽부터 일어나신 아버지가 가마솥에 물을 끓여 놓으시면 우리는 양동이에 김이 무럭무럭 나는 뜨거운 물을 담아다가 차가운 우물물과 섞어서 사용했다. 날씨가 워낙 추워서 우물가에서 머리를 감고 마당을 지나 방으로 들어갈라치면 머리는 어느새 뻣뻣한 칼처럼 날이 서고 한지 문고리에 내 손이 딱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었다.

어머니는 학교 갈 때 발이 시릴까 봐 아궁이 불 앞에 신발을 놓아 따뜻하게 해 주시곤 했는데, 따뜻한 신발을 신고 나서는 등굣길 발걸음은 사랑을 듬뿍 받아 마냥 신이 났다.

초등학교는 어린이 발걸음으로 40분은 걸어가야만 하는 먼 거리에 있었다. 지나는 길옆 마을에 초가집이 한두 채 있었는데 초가지붕엔 길고 짧은 고드름이 주렁주렁 매달려 고드름을 따다가 칼싸움을 하며 가기도 했다. 논과 밭 사이의 허허 들판은 논두렁길을 따라 걸어가야 하는데 바람은 또 얼마나 거세게 뺨을 후리는지 늘 빨갛게 상기되어 있어 아이들의 놀림이 되기도 하였다. 그래도 찬바람에 맞서서 당차게 걸어다녔던 기억들이 훗날 어려움을 겪을 때 나를 강하게 만들고 견디게 해주는 원동력이 된 것 같다.

어린 시절에는 아이들이 콧물이 줄줄 나고 기침을 해도 여전히 밖에 나가서 뛰어놀고 심지어 남자아이들은 냇가에 가서 얼음을 깨고 개구리를 잡는 등 추위를 겁내지 않았었다. 그러나 요즘 부모들은 아이들이 조금만 아프면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고, 추울 때는 집 안에서만 놀게 하는 등 지나치게 온실 속의 화초처럼 보호하는 경향이 많다. 등교도 학교까지 차로 데려다 주는 것이 흔한 일상이 되었다. 그러다 보니 조금만 힘든 일도 아이들이 견뎌내지 못하고 중간에 그만두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또 사회가 예전에 비해 풍족해지다 보니 아이들 또한 어려움은 피하고 일단 편하고 보자는 경향이 크다.

이제부터라도 아이들에게 삶의 면역력을 키워주기 위해서라도 힘든 세상 속으로 내보내야겠다. 악조건 속에서 삶의 고난도 배우고 눈물도 배운다면 웬만한 세상 풍파는 가볍게 넘으리라.

배추도 추위를 견딘 고랭지 배추가 더 달고, 마늘도 추위를 견딘 마늘이 단단하고 향기도 좋다. 사람 또한 어려움을 극복하고 견뎌 낸 사람에게는 값진 경험으로 얻은 진한 인간미가 나온다. 어려움을 극복하고 일어선 사람이 남의 어려움도 같이 공감하고 힘을 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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