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득력을 발휘할 때다
설득력을 발휘할 때다
  • 권혁두 기자
  • 승인 2018.01.28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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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 권혁두 국장

한니발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패장'으로 꼽힌다. 로마를 치기 위해 코끼리를 몰고 눈 덮인 알프스산을 넘은 기상천외한 도전 하나만으로도 전설이 돼버린 인물이다. 아프리카의 강국 카르타고와 이탈리아 반도를 제패한 로마가 지중해 지배권을 놓고 격돌한 이 전쟁(2차 포에니 전쟁)에서 한니발을 패퇴시킨 로마의 승장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는 한니발의 그림자에 가려 후대의 대중에게 각인되지 못했다.

부친을 따라 전쟁터를 전전했다고는 하지만 알프스를 넘을 때 한니발의 나이는 풋내가 나는 28살에 불과했다. 거느린 병력은 2만6000명. 대부분 돈 주고 고용한 용병들이라 팀워크나 충성도는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반면 로마의 병력은 동맹국까지 포함해 75만명. 외형상 전력에서는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을 방불케했다. 더욱이 로마는 이탈리아 반도를 통일하며 전성기를 맞은데다 1차 포에니 전쟁에서 카르타고를 꺾은 전적이 있어 자신감도 넘쳐났다.

그러나 로마의 기대는 초장부터 빗나갔다. 카르타고는 연전연승하며 이탈리아 반도까지 진출했고, 칸나에 전투에서 로마 주력군을 괴멸시킴으로써 로마를 풍전등화의 위기로 몰아넣었다. 기마병을 절묘하게 활용한 속도전과 교란전에 로마는 속수무책이었다. 이후 로마는 전면전을 회피하는 지구전으로 돌아섰고 16년간 한니발의 손아귀에서 농락을 당해야 했다.

초반의 카르타고 기세대로 라면 로마 정복은 시간문제였다. 그런데 로마의 지구전 앞에서 한니발은 결정타를 날리지 못하고 시간만 벌어주다가 막판 스키피오의 일격(자마전투)에 허무하게 무너졌다.

로마의 후예인 이탈리아의 고등학교 역사교과서에 나오는 지도자의 다섯 가지 자질은 지적능력, 설득력, 체력, 자제력, 의지라고 한다. `로마 이야기'저자로 유명한 시오노 나나미는 이를 바탕으로 로마시대 영웅들의 자질을 평가했다. 전 항목 만점은 카이사르가 유일했다. 한니발은 3가지 항목에서 만점인 100점, 지적능력에서 85점을 받았지만 설득력에서는 65점으로 저조했다. 시오노 나나미는 그의 패인을 설득력 부족에서 찾았다.

한니발은 전쟁에 나서며 하나의 확신을 가졌다. 로마군을 격퇴해 확실한 우위에 서면 로마를 중심으로 구축된 이탈리아 국가연합에 균열이 올 것으로 봤다. 로마와 동맹을 맺은 반도의 군소 국가들이 이탈해 자신에게 호응할 것으로 기대했다. 해서 열세인 자신의 군사력이 보강되고, 상대적으로 로마의 전력은 급격히 약화할 것으로 판단했다. 그러나 실제 카르타고로 돌아선 국가는 극소수에 불과했고, 대부분 동맹국은 로마가 궁지에 몰렸음에도 우호적 관계를 유지했다. 로마가 보호국으로서의 역할에 충실하며 로마연합을 운명공동체로 키워온 사실을 간과했던 것이다.

확신이 오판으로 밝혀졌으나 한니발은 대안을 마련하지 못했다. 로마 동맹국들을 유인하기 위한 책략을 동원해야 했지만 외교적 전술에서는 능력도 의지도 발휘하지 못했다. 로마는 동맹국들이 의리를 지켜 전선을 방어해준 덕분에 기사회생했지만 한니발은 적의 동맹을 설득해 내 편을 만들지 못한 탓에 패장이 됐다.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이 2주 연속 떨어졌다. 갤럽의 최근 조사에서는 64%, 리얼미터에서는 훨씬 낮은 59.8%를 기록했다. 특히 지지기반인 20~30대의 이반이 상대적으로 커 청와대에 비상등이 켜졌다. 여러 가지 원인이 꼽히고 있지만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 구성이 가장 큰 요인으로 지목된다. 청와대는 단일팀에 대한 젊은층의 반발을 사전에 읽지 못했다. 청와대는 단일팀 구성이 세계가 주목하는 올림픽, 남북 화해, 한반도 평화, 나아가 북핵 해결의 초석이 될 수도 있는 국가적 대의에 부합한다고 믿었을 것이다. 적어도 지지층이나 진보 쪽에서는 이견이 없을 것으로 확신했지만 의외의 결과가 나온 것이다.

문제는 설득의 절차가 없었다는 점이다. 정부는 일방적 확신에 안주하고 국민의 공감을 강요했을 뿐 북한을 올림픽에 참여시키는 과정에서 단일팀 구성이 꼭 필요한 이유를 설명하지 않았다. 허탈해진 우리 선수들을 설득해 박탈감을 달래주는 노력도 부족했다. 오히려 총리는 “어차피 메달을 기대할 종목은 아니다”며 모멸감을 줬다. 민심을 멋대로 재단하고 정책을 밀어붙인 오만을 범하지는 않았는지 숙고하고 반성할 일이다. 오락가락했던 암호화폐 규제나 어린이집 영어교육 금지 등도 설득과 교감의 과정을 소홀히 함으로써 자초한 시행착오들이다. 시종 우위의 판세를 유지하고도 종국에는 로마에 무릎을 꿇은 한니발의 결격사유를 깊이 헤아려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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