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강의 오리
봄 강의 오리
  • 김태봉<서원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 승인 2018.01.22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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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봉 교수의 한시이야기
▲ 김태봉

밤이 깊으면 새벽이 가까이 온 것이고, 겨울이 깊으면 봄이 올 날이 머지않은 것이다. 사람들이야 달력을 보고 봄이 오는 날짜를 가늠하지만, 만약 달력이 없다면 자연현상을 보고 봄이 오는 것을 알아챌 수밖에 없을 것이다.

강물이 아주 차갑거나 얼어붙어 있을 때는, 물 없이는 못 사는 오리도 물을 찾지 않는다. 그러다가 겨울 추위가 풀려 수온이 올라가면, 오리는 영락없이 물속으로 돌아온다.

도대체 오리에게 물이 따뜻해진 것을 알린 존재는 무엇일까? 아마도 본능적으로 알아차릴 것이다.

송(宋)의 시인 소식(蘇軾)은 물에 나온 오리를 보고 봄이 왔음을 말한 그림을 보고 찬탄을 마다하지 않았다.

봄 강 그림에 제함(題惠崇春江曉景)

竹外桃花三兩枝(죽외도화삼량지) 대나무 밖 복사꽃 두서너 가지
春江水暖鴨先知(춘강수난압선지) 봄 강물 따뜻해지니 오리가 먼저 아네
蔞蒿滿地蘆芽短(누호만지노아단) 땅에는 물쑥 가득하고 갈대싹 돋으니
正是河豚欲上時(정시하돈욕상시) 복어(河豚)떼 강으로 올라오려는 때라네


이 시를 볼 때 독자들은 먼저 시인이 송(宋)의 화승(畵僧) 혜숭(惠崇)의 그림인 춘강효경(春江曉景)에 제(題)하여 쓴 것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림에 나타난 화가의 의도를 시인의 눈으로 읽어낸 것이니, 이 시의 뜻은 결국 저 그림의 해석인 셈이다.

대나무밭이 있고 그 밖으로 복숭아꽃이 달린 나뭇가지 두세 개가 보인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복숭아 꽃 두세 가지이다. 대나무야 겨우내 그 자리를 지켰던 것이라 전혀 새로울 게 없었다. 안 보이던 복숭아 꽃 가지가 보이기 시작한 것을 말하고자 하는 화가의 의도가 보이는 장면이다. 결국 봄이 왔음을 화가는 이렇게 말한 것이다.

그러면 강물에 봄이 온 것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봄이 오면 강물이 따뜻해졌을 텐데, 이것을 그림으로 어떻게 나타낼까 고심하던 화가는 강물 위에 물오리 떼를 그려 놓았다. 물이 차가운 겨울에는 보이지 않던 오리였던 것이다. 뒤에 따라나오는 물쑥이며 갈대 싹이며 복어 떼 같은 것들은 모두 겨울에 없다가 봄에 나타난 경물들이고, 화가는 이들을 그림에 적절히 배치함으로써 봄이 왔음을 시각적으로 보여주고 있는데, 이것을 읽어내어 그 느낌을 온전히 전한 것은 시인의 대단한 역량이 아닐 수 없다.

사람이 세상을 살면서, 봄이 온 것을 발견하는 것은 큰 즐거움이 아닐 수 없다.

봄이 오면서 생기는 작은 변화들을 포착하는 것이 봄을 먼저 알아채는 비결이다. 겨우내 안 보이던 오리가 물 위에서 노니는 것을 보고도 봄이 왔음을 모른다면 계절 문맹을 의심해 봐야 할 것이다.

/서원대학교 중국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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