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표 있는 삶
쉼표 있는 삶
  • 정상옥<수필가>
  • 승인 2018.01.22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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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 정상옥

해마다 1월이면 신년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대부분 몇 달을 채 넘기지 못하고 흐지부지되곤 했다. 올해도 새해를 맞이하며 나름 밝은 포부를 가지고 정말 실현 가능한 목표 몇 가지를 세웠다. 그중 한 가지가 한 달에 한 권의 책 완독하기였다.

지난해를 돌아보니 분주하고 팍팍하게 짜인 시간 속에 산다는 이유를 합리화시키며 변변한 책 몇 권 읽질 못했다. 잠깐의 여가마저 육체적인 쉼을 택하며 살아오다 보니 돌아보면 뒤안길엔 쓸쓸하고 바람 같은 공허함만이 정서를 채우고 있다.

오랫동안 서재에서 자리만 지키던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란 책과의 조우는 나태한 일련의 습관과 자꾸 푸석해져 가는 감성에 자양분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신년의 기도 같은 마음이었다.

`잠깐 멈추고 나를 사랑하는 시간을 가지세요.'라는 혜민 스님의 프롤로그를 대하는 순간 가슴이 먹먹해졌다. 지나온 세월 안에 오롯이 나만을 위한, 나를 사랑하는 시간을 할애했던 적이 몇몇 날이 있었던가. 질풍노도 같은 세월도, 파도타기 같은 굴곡진 삶의 터널도 꿋꿋하게 헤쳐 나온 용감한 정신력만큼은 단단히 연마한 연륜이 되었지만.

앞을 향한 무한한 질주만이 삶의 정석인 줄 알며 반세기도 훌쩍 넘긴 그 많은 시간 속에서 나 자신을 진실로 사랑한다 도닥이며 자존을 키웠던 적은 도통 내 기억 속에서 찾을 수가 없다. 나이 듦에 따라서 자존의 척도가 자꾸만 작아져 가던 이유의 답이 이 책을 읽으며 희미하게나마 보이는듯했다.

지금 이순부터라도 뒤처졌다는 열등감보다는 오직 나만의 색깔과 열정을 찾아내어 자신의 온전함과 존귀함을 일깨워주라는 용기와 위로를 페이지를 넘겨갈수록 혜민 스님은 내게 전해주었다.

생각은 크게 하고 실천은 작은 것부터 지금 당장 시작하라는 말씀이 나에게 잔잔하지만 찌릿하게 심연의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무작정 계획을 크게 세워 시작하기도 전에 버거워 지친 경험이 있는 나였기에 더 진하게 마음에 남았나 보다.

쉴 틈 없는 분주한 일상 또한 나 자신이 만든 굴레란 걸 알면서도 선뜻 쉼표를 찍지 못했던 것은 결국 나 자신을 사랑하지 못한 자학이며 혹사였으리.

앞만 보며 달리던 삶의 여정에서 소소하지만 아름답고 그래서 더 행복한 것들을 얼마나 많이 놓치고 살았는지.

책 한 권을 다 읽기도 전에 신년에 세운 계획표 맨 위 줄에 얼른 한 가지를 더 적어 넣었다.

쉼표 있는 삶 즐기기. 한 달에 한 권의 책을 한 장 한 장 읽는 동안 또한 바쁜 일상에서 잠시 멈추어 서서 마음의 양식으로 인격을 수양해가는 것도 휴식이고 내 존재를 사랑하는 시간이니까.

다람쥐 쳇바퀴 같은 일상에서 가끔은 잠시 멈추어 넓은 하늘도 쳐다보고 스치는 바람결도 느껴보리라. 무심히 지나쳐온 내 삶의 편린들의 소중한 가치를 되새겨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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