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인
화성인
  • 권재술<전 한국교원대 총장>
  • 승인 2018.01.18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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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시간의 문앞에서
▲ 권재술

아마도 2006년쯤이었을 것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우주인 이소연 박사가 우주선을 탄 것이 2008년이었고, 필자는 이소연 박사가 우주에서 할 실험 공모에 제출된 프로젝트들의 심사위원을 맡았다. 공모에 나온 실험들에는 좋은 아이디어들도 많았지만 아주 엉뚱한 것들도 있었다. 예를 들면 텔레파시 실험을 우주에서 하겠다는 것이 그 한 예다. 그런데 그 텔레파시 실험을 제안한 사람이 우리나라 유명 연구소의 기계공학 박사라는 점이 나를 더욱 놀라게 했다. 식사하는 자리에서 그 박사가 화성인 얘기를 하기에, 내가 “과학을 하는 분이 그렇게 근거도 없는 주장을 펴면 되느냐?”면서 한마디 했더니, 그 박사라는 자는 아연실색하면서 “왜 근거가 없느냐?”면서 화성에는 우리보다 훨씬 발달된 문명이 있다는 수많은 증거들이 있고, 심지어 달에도 사라진 고대 문명이 있었다는 것이다. 나는 더 이상 상대할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여 무시하고 말았다.

화성인에 대한 믿음은 역사가 깊다. 아마도 화성인이라는 생각에 불을 지핀 것은 1877년 화성이 지구에 근접했을 때, 이탈리아 천문학자 스키아파렐리(Giovanni Virginio Schiaparelli, 1835~1910년)가 화성을 관찰하면서 화성에 있는 긴 줄 모양을 발견하고, 그것을 `카날리(canali)'라고 이름 붙인 것이다. 문제는, 그것을 영어로 cannel, 즉 운하로 잘못 번역되면서 `화성에 거대한 운하가 있다'는 설이 일파만파로 퍼진 것이다. 하지만 카날리는 이탈리아 말로 강줄기나 골짜기 모양으로 길게 파인 자국을 의미한다. 이것은 자연적 지형을 일컫는 말인데 운하로 번역되면서 온갖 오해가 생겨났던 것이다. 운하가 있다면 문명이 존재하고, 문명이 존재한다면 사람이 있다는 말이 된다. 물론 그 사람이 지구인과는 다른 모습이겠지만 말이다. 그래서 `화성인'이라는 말이 생겨나면서, 상상하기 좋아하고,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믿기를 좋아하는 인간들이 온갖 종류의 화성인을 만들어 낸 것이다. 화성인은 영화, 만화, 소설, 시, 예술 등 온갖 영역에 아주 매력적인 인물로 등장했고, 인간들의 호기심을 타오르게 하는 불쏘시개 역할을 하게 되었다. 영화 ET는 얼마나 감동적이었던가? 화성인은 이제 우리 인류의 친구이자 우리의 구원자가 되기에까지 이르렀다. 여기에 현혹된 사람들이 전 세계에 이루 말할 수 없이 생겨났고, 급기야는 그 이상한 과학 박사님까지 화성인을 믿고 있는 것이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 중에도 틀림없이 상당수는 화성인을 믿고 있을지 모른다.

과학자들은 많은 우주선과 망원경과 전파를 통한 우주 탐사에서 아직 화성인은 고사하고 박테리아 하나도 지구 밖에서 찾아내지 못했다. 그럼에도 왜 수많은 사람들, 심지어 과학자(물론 사이비 과학자이지만)들까지 외계인의 존재를 믿고 있을까? 유발 하라리는 그의 저서 호모 사피엔스에서 인간의 `허구를 믿는 능력'이 오늘의 문명을 가능하게 했다고 주장한다. 허구를 믿는 유일한 동물이 인간이다. 인간은 신을 믿고, 사랑을 믿고, 우정을 믿고, 사회정의를 믿는다. 그러한 심리적 기제가 다른 한 편으로는 외계인의 존재를 믿게 했을지 모른다. 모든 원리가 그렇듯이 이 허구를 믿는 능력에도 양면성이 있다. 인간만 가진 이 `허구를 믿는 능력'이 인간으로 하여금 서로 협동하고 사랑하게 하는 반면, 화성인을 믿고, 비행접시를 믿고, 외계인을 믿고, 다빈치 코드를 믿는다. 이 믿음으로 굿을 하고, 사이비 종교집단의 집단자살도 가능하게 한다.

지금도 비행접시를 봤다는 사람, 비행접시 사진을 찍은 사람, 심지어는 비행접시에 올라 타보았다는 사람, 더 나아가 비행접시에서 떨어진 외계인을 미국이 비밀리에 보관하고 있다는 사람 등 수없이 많은 유언비어가 난무하는 것이 이 지구의 현실이다. 이 글을 읽는 사람 중에는 내 말보다는 그러한 유언비어를 믿고 있는 사람이 더 많을지도 모른다. 가만히 가슴에 손을 얹고 당신은 어느 쪽인가 생각해 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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