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토끼와 겨울나무
산토끼와 겨울나무
  • 김기원<시인·편집위원>
  • 승인 2018.01.17 19: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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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원의 목요편지
▲ 김기원

이틀 후면 일 년 중 가장 춥다는 대한(大寒)입니다.

대한이 소한 집에 놀러왔다가 얼어 죽었다는 옛말도 있지만 누가 뭐래도 대한은 절기상 겨울의 절정이자 클라이맥스입니다. 대한이 지나면 동장군의 위세가 조금씩 떨어져 입춘과 우수·경칩을 맞이하게 되니까요.

이번 겨울은 예년에 비해 눈도 많이 오고 추위도 매서워 겨울다운 겨울이었어요. 산속의 토끼와 겨울나무가 걱정이 될 정도로.

하여 어릴 때 즐겨 부르던 강소천 작사 권길상 작곡 `산속의 토끼야'와 이원수 작사 정세문 작곡 `겨울나무'를 나직이 불러봅니다.

아동문학계의 양대 산맥이었던 강소천과 이원수님의 아름다운 동심이 동요 속에 녹아있어 이순을 한참 넘긴 나이에도 가슴 저밉니다.

`토끼야 토끼야 산속의 토끼야/ 겨울이 되면은 무얼 먹고사느냐/ 흰 눈이 내리면은 무얼 먹고사느냐/ 겨울이 되어도 걱정이 없단다/ 엄마가 아빠가 여름 동안 모아 논/ 맛있는 먹이가 얼마든지 있단다.'

`산속의 토끼야'전문입니다.

추운 겨울이지만 엄마와 아빠가 여름 동안 모아 논 맛있는 먹이가 있어 걱정이 없다는 산토끼 가족의 모습에서 인간의 겨울나기를 반추하게 됩니다. 자식을 위해 무얼 했으며 자식은 온전하게 잘 사는지에 대한 물음에 답해야 하니까요.

`나무야 나무야 겨울나무야/ 눈 쌓인 응달에 외로이 서서/ 아무도 찾지 않는 추운 겨울을/ 바람 따라 휘파람만 불고 있느냐/ 평생을 살아 봐도 늘 한 자리/ 넓은 세상 얘기도 바람께 듣고/ 꽃 피던 봄여름 생각하면서/ 나무는 휘파람만 불고 있구나.'

`겨울나무'의 전문입니다.

겨울나무가 눈 쌓인 응달에 외로이 서서 추운 겨울을 꽃피는 봄여름을 생각하면서 휘파람 불며 이겨내고 있으니 너희들도 그렇게 환란과 곤경을 이겨내라 합니다.

겨울나무처럼 강인하고 의연한 긍정의 에너지로 말입니다.

유년시절 변변한 장갑도 양말도 없이 썰매를 타고 눈싸움을 해 겨울을 날 때마다 손발에 동상이 걸려 고생했지만 다들 산토끼와 겨울나무 동요를 부르며 겨울을 씩씩하게 이겨냈어요. 춥고 배고팠던 겨울의 긴 터널을.

그랬어요. 찢어지게 가난했지만 우리 부모 세대는 자식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봄여름 가을 겨울 없이 손발이 부르트도록, 허리가 휘어지도록 일하고 또 일했어요.

꽃 피고 열매 맺는 봄여름 생각하며 그렇게 휘파람 불며 억척스럽게 살았지요.

요즘 아이들은 노랫말이 진부하고 멜로디가 단조롭다고 잘 부르지 않지만 말입니다.

그들에게는 겨울이 춥고 힘든 계절이 아니라 눈썰매 타고 스키 탈 수 있는 즐겁고 신나는 계절이라 빠르고 힘찬 노래를 부르고 싶은 거죠.

집집마다 난방이 잘 돼 있고, 보온성이 뛰어난 옷을 입고 살아 겨울 추위가 무섭지 않고 겨울나기가 두려울 게 없죠. 물질문명의 발달로 의식주가 향상된 자연스러운 현상이지요.

아무튼 우리는 사계절이 뚜렷한 대한민국에서 태어났고, 사계절에 익숙한 DNA를 갖고 태어났습니다. 그러므로 겨울은 겨울다워야 하고 여름은 여름다워야 해요. 겨울이 추워야 봄이 아름답고 여름이 더워야 오곡백과가 잘 여무니까요.

겨울이 춥지 않고 여름이 덥지 않으면 당장은 편하고 좋을 진 모르지만 당대든 후대든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되어 있어요. 그래요. 겨울은 우리에게 교만하지 말라고, 유비무환 하라고, 고진감래하라고, 나보다 어렵게 사는 이웃을 돌보며 살라 합니다.

엄마 아빠가 맛있는 먹이를 여름 동안 모아놓아 걱정이 없는 산토끼 가족처럼, 눈 쌓인 응달에 외로이 서서 휘파람 불며 꽃피는 봄여름을 기다리는 겨울나무처럼. 우리 그렇게 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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