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온도
마음의 온도
  • 박윤미<충주예성여고 교사>
  • 승인 2018.01.14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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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엿보기
▲ 박윤미

시베리아의 찬 공기가 한반도 상공을 덮었다. 나이아가라 폭포도 얼어버렸다고 할 정도로 전 세계 곳곳에 매서운 한파가 기승이다.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기온이 높아지는 것만은 아니다. 여름엔 폭염이, 겨울엔 한파가 잦을 거라고 한다.

해가 지면 기온이 급격히 떨어지니, 따뜻한 안식처로 향하는 걸음이 더욱 총총하다. 일찍 퇴근하여 좋은 주차 자리를 잡게 되었는데, 흰둥이를 오랜만에 보게 되었다. 건물 옆에 있는 너른 빈터 한쪽에 플라스틱 개집이 있고, 흰둥이는 제법 긴 쇠줄에 매여 있다. 그런데 한 자리에서 맴맴 도는 것이 앉을 곳을 찾는 모양인데, 찬 시멘트 바닥이 마땅하지 않은 눈치다.

집에 와서 못 입는 딸아이의 겨울 외투 하나를 찾아 들고나갔다. 그새 벌써 어둑해졌다. 내가 다가가자 흰둥이가 크게 한번 짖으며 한걸음 펄쩍 뛰어 다가왔다. 순간 깜짝 놀라 뒷걸음질쳤지만, 내가 한 발 뒤로 갈 때마다 조금 조금씩 다가왔다. 목줄이 생각보다 길어서 당황스러웠다. 플라스틱 집 안에 따뜻하게 깔아주고 싶었는데, 할 수 없이 외투를 시멘트 바닥에 던져주었다. 녀석은 깔개에는 관심이 없고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꼬리를 살랑살랑 조금 흔들며.

그 밤 평소보다 난방 온도를 더 높이고 누웠는데 자꾸 흰둥이가 생각났다. 플라스틱 집도 차갑고, 시멘트 바닥도 차가울 텐데. 낮에도 추웠고 초저녁에도 추웠고, 밤새 기온은 더 내려갈 텐데 그 냉기를 견딜 수 있을까? 흰둥이는 이 밤이 얼마나 길까?

사실 지난여름에도 일이 있었다. 흰둥이를 휴점 중인 가게 유리문 손잡이에 매어놓았는데 온종일 그늘 하나 지지 않는 남서쪽 자리였다. 뜨거운 뙤약볕 아래 혀를 길게 빼고 섰는데, 줄이 짧아서 눕지도 못하는 거 같았다. 고민하다가 주인에게 가서 목줄을 조금만 길게 해달라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몇 날이 지나 여름 아침 시원한 공기에 한량없이 태평스럽게 누워 자는 흰둥이를 발견하고서야 내 맘의 폭염이 누그러졌다. 그렇지만 흰둥이는 여름 내내 뜨거운 그 자리에 있었다.

춥고 긴 밤이 지나 흰둥이에게 갔더니, 내가 던져준 잠바와 함께 겨울 외투 여러 개가 시멘트 바닥에 뒹굴며 더미를 이루고 있었다. 여러 사람이 던져준 것이다. 흰둥이를 보고 있는 이웃이 한둘이 아니다.

이때 눈에 들어온 것이 있었다. 흰둥이의 플라스틱 집 바닥에 검은색의 모포가 깔렸다. 주인의 손길이리라. 흰둥이가 밤새 아주 찬 곳에서 잔 것은 아니다. 엊저녁엔 미처 보지 못하고 밤새 씩씩거렸던 나 자신에 배시시 웃음이 났다. 지난여름 일까지 끄집어내어 주인의 무심함에 화를 낸 것이 미안하기도 했다.

한파가 시베리아에서 오는 것만은 아니다. 이웃이 사는 모습이 찬바람이 되기도 하고 햇살이 되기도 한다. 내가 사는 모습이 누군가의 마음에 한파가 되기도 하고 봄이 되기도 한다. 비쩍 마른 흰둥이가 어제보다 꼬리를 더 힘차게 팔랑팔랑 흔든다. 주변의 따뜻한 눈을 아는 듯 점잖은 눈빛이다.

오늘도 추운 겨울 하루이고 당분간 추운 겨울이다. 안타깝지만 네가 견뎌내야 할 몫이구나. 이 추운 겨울을 잘 견뎌내길 바란다. 또 찾아올 폭염도. 오늘도 기온은 어제만큼 낮겠지만 세상을 향한 따뜻한 마음으로 거뜬히 맞서는 힘을 얻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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