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과 이별의 승화
만남과 이별의 승화
  • 류충옥<수필가·청주경산초 행정실장>
  • 승인 2018.01.14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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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가는대로 붓가는대로
▲ 류충옥

처음이 있으면 끝이 있듯이 만남이 있으면 이별이 있다. 이별은 또 다른 만남의 시작점이 되어 뫼비우스의 띠처럼 끊임없이 릴레이를 하는지도 모르겠다. 충청타임즈 지면을 통한 독자와의 만남도 다른 분의 끝맺음을 통한 이별을 통해서 오늘 나는 처음 만남을 시작하고 시간이 지나면 이별을 하게 될 것이다.

모든 만물은 나고 자라고 결실을 맺고 휴지기(休止期)를 가지게 된다. 작은 풀도, 큰 나무도, 짐승도, 인간도, 별도, 우주도 그렇다. 인간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인간은 한자 그대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로 얽혀 있을 때 인간다워진다. 한 사람 한 사람의 개개인이 만나서 서로의 관계를 형성할 때 우리는 만물의 영장도 될 수 있고, 멋진 신세계도 건설해 나갈 수 있는 것이다.

만남 속에서 우리는 또 상처를 입기도 하고 마음을 다치기도 한다. 사람들과 부대껴서 살다 보면 나를 무시하거나 폭언하는 사람 때문에 마음이 다치기도 하고, 때론 나의 열등감 때문에 스스로 마음을 닫거나 아파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74억명의 인간 중 똑같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렇게 다양한 인간들인데 어떻게 나의 생각과 동일할 수 있겠는가.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상대방의 입장을 헤아려 생각해 본다면 인간관계 속에서 상처받는 일이 줄어들 텐데 우리는 그 한계를 뛰어넘는데 많은 고통의 수업료를 낸 후 비로소 깨닫게 된다. 좋지 않은 만남으로 맞닥뜨린 순간에는 이해의 한계에 부딪쳐 원망스럽고 밉고 원수 같아서 때론 복수심에 불타기도 하지만 남을 미워하는 만큼 내 마음 또한 지옥 같은 괴로움에 시달리다 보면 힘든 나 자신을 위해서라도 내려놓게 된다. 그러다 보면 마음에 공간이 생기고 비로소 한발 떨어져서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객관적으로 본다는 것은 내 관점, 내 입장만 고수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상황과 괴로움까지도 입장 바꿔 생각해 보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다 보면 상대방이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게 된다. 각 개개인이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상대방을 존중해줄 때 비로소 우리 만남은 성숙하여 좋은 열매를 맺고 마무리를 잘할 수 있게 된다.

사람은 만남보다는 이별에 공을 더 들여야 한다. 누구나 처음 만날 때는 어떤 기대감을 가지고 희망에 차 있으나 만남의 시간 속에서 실망도 하고 배반감도 느끼면서 미워하게 된다. 그래서 원수가 되는 이별도 있고 서로 무관심하게 멀어지는 이별도 있다. 그러나 가장 좋은 만남은 가장 좋은 이별로 이어질 것이다. 하루를 만나든 100년을 만나든 상대방에게 진심을 가지고 최선을 다 했다면 (상대방이 나에게 어떻게 하든) 나는 좋은 관계를 위해 노력하는 것이 되고 좋은 관계는 좋은 이별이 되어 또 다른 좋은 만남을 낳게 된다. 좋은 이별만이 척(斥)을 짓지 않기 때문이다.

`좋은 이별이 있는가?'라고 혹자는 반문할 테지만 평생을 못 보는 이별을 할지라도 우리 마음속에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게 되어 이별의 승화로 좋은 만남이 이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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