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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장 너머 그리움 가득한 담파고

生의 한가운데 임현택<수필가>l승인2018.01.12l수정2018.01.11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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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정 무렵이면 친정마을엔 하얀 비닐하우스 물결이 인다. 농번기 농한기가 따로 없는 시골, 언 땅에 말뚝을 박고 파이프를 세워 펄럭이는 비닐을 양쪽에서 잡아당겨 엽연초경작용 비닐하우스를 만든다. 학생 시절 동생들은 재미난 놀이라도 하는 양 신나게 잡아당기며 아버지를 도왔다. 옛날 방문으로 하우스문도 달아준다. 비닐이 바람에 펄럭이지 않도록 긴 줄을 하우스 위로 넘겨 양쪽 끝에 커다란 돌을 매달아 고정을 시켜 바람도 잡았다.

마을 사람들은 비닐하우스를 만들 때면 서로 품앗이라도 하는 양 집집마다 다니면서 서로 도왔다. 마치 농사준비를 위한 잔치처럼 막걸리에 수육도 만들어 비닐하우스 안에서 한 잔씩 곁들이면서 일들을 하셨다.

구정이 지나면 잎담배 경작인은 한해 농사일에 분주해진다. 하우스 속에 또 묘상하우스를 만들어 씨앗을 파종하여 낮에는 열어 햇빛을 받아 발아할 수 있도록 한다. 해가 지기 시작하면 보온덮개를 이용하여 덮고 덮어 보온을 유지하여 촉을 띄었다. 이맘때부터 동네 분들은 품앗이가 시작된다. 출타라도 하는 날이면 이 집, 저 집 다니면서 서로 비닐하우스 안의 덮개를 덮어준다. 지금은 공장에서 대량으로 생산되는 보온덮개가 있지만, 그때만 해도 보온덮개는 귀한 존재였고 지푸라기를 엮고 엮어 만든 꺼치(거적)로 해가 떨어지기 시작하면 급격히 내려가는 온도로 두세 겹 덮어 보온을 유지했다. 아버지는 엽연초농사가 천직이라 하셨다. 가을걷이가 끝나면 마당 언저리엔 짚단이 움막처럼 쌓였다. 겨울이면 윗목에는 언제나 꺼치틀이 자리를 잡았다. 안방 윗목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짚을 추린 다음 틀 위에 올려놓고 고드랫돌을 앞, 뒤로 넘기면서 삶을 엮듯 차곡차곡 엮는다. 고드랫돌이 부딪치는 달그락거리는 소리는 늘 한음을 타고 흐른다. 꺼치가 길게 짜이면 온갖 세간 위에는 아버지의 고단한 삶에 항변이라도 하듯 지푸라기 먼지가 켜켜이 쌓여 있고, 간간이 침묵을 깨는 헛기침소리만 정적을 깨곤 했다.

그렇게 겨우내 아버지와 동행한 고드랫돌은 고단한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듯 손때가 묻어 반들반들 윤이 난다. 그런 반면 아버지 손은 꺼치처럼 거칠고 투박하게 변하고 있었다. 아버지 손이 거칠어질수록 문밖에는 가지런히 쌓여 있는 황금빛을 닮은 꺼치가 높다랗게 쌓여 갔다. 생업을 위해 담배농사를 일 년 내내 경작을 하고 또 아버지는 담배 한 모금으로 삶을 위로 받고 있었으니 돌이켜보니 참으로 아이러니한 동반자였다.

쉼 없이 달려온 세월, 내가 출가하고도 마른 이파리처럼 금방 부서질 것 같은 노구의 몸으로 몇 해를 더 엽연초경작을 하셨다. 담배가 우리나라에 처음 전래된 것은 광해군 때 일본으로부터였다. 남쪽 국가에서 들어온 신령스런 풀이라는 뜻으로 담배를 남령초, 담파고라 불렀다. 담파고 경작은 농사 중의 수입원이 제일 많아 가장 선호하는 작물로 허리가 굽도록 지난 세월을 묻은 것이다. 이제 어디에서도 더는 들을 수 없는 그 음, 아련한 고드랫돌 음률이 귓전에 희미하게 맴도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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