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른 길
너른 길
  • 정세근<충북대 철학과 교수>
  • 승인 2018.01.10 2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세근 교수의 인문학으로 세상 읽기
▲ 정세근

우리는 큰길만 좋은 줄 안다. 탄탄대로(坦坦大路)라는 말도 있다. 길이 널찍하고 평탄(平坦)하면 다니기도 좋고 시원하게 보인다.

우리의 길은 좁았다. 그래서 새마을운동 노래에는 `초가집도 없애고, 마을 길도 넓히고'라는 가사가 나온다. 길이 좁아 농기구가 들어가지 못해 효율적인 노동이 되지 못한다는 설정이다.

과연 좁은 길은 나쁘고 넓은 길은 좋은가? 이런 질문은 `초가집은 무조건 없애야만 하는가?'라는 의구심과 통한다.

요즘은 추수로 기계를 하는 바람에 초가집을 이을만한 길이의 볏짚을 구하기 힘들다. 손으로 베야 얻을 수 있으니 인건비 비싼 요즘에 누가 쉬이 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누구 생가라며 소개하기 위해서는 볏짚이 몇 단씩 들어가는 초가를 지어야 하니 고민이 있는 모양이다. 초가집과 더불어 좁은 길은 가난의 상징이었다. 계획도시 서울의 광화문 앞길이나 종로처럼 곧고 너른 길은 반대로 권력과 발전을 의미했다. 그래서 근대화 시절의 우리는 길을 넓히고자 애썼다.

정말로 넓혀졌는가? 그렇지도 않다. 넓히고자 한다면 생각한 것의 두 배는 되어야 한다는 것이 평소 내 지론이다. 왕복 4차선을 계획했으면 아예 8차선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중국은 처음부터 왕복 6차선을 기준으로 고속도로를 건설한다. 도심으로 들어가는 길을 제외하고는 아직까지 널널한데도 만드는 김에 크게 만드는 중국인의 안목이 놀랍다. 말이 대로지 우리나라에 정말로 넓은 길은 많지 않다.

오히려 엉뚱한 길이 넓다. 대학에 시원한 탄탄대로가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듯한데 근대화의 결과물로 대학에도 곧게 낸 길이 많다. 학내의 안정 또는 안전을 위해서 똑바른 길이 반드시 이상적이지 않은데도 말이다.

스코틀랜드를 여행하다 보면 외길이 많음을 느끼게 된다. 교행을 위한 공간을 군데군데 만들어놓았을 뿐이다.

그들이 돈이 없어서 그럴까? 그들의 행정이 엉망이라서 그런 길을 내버려두었을까? 아닐 것이다. 아름다운 스코틀랜드 풍광을 조금이라도 덜 훼손하고자 하는 깊은 뜻이 있을 것이다.

유럽에는 일방통행이 많다. 차 한 대가 간신히 다니는 길이 많은 유럽이니 당연하다고 생각하기에 앞서, 전통을 지키는 그들의 모습을 먼저 떠올려야 한다. 물론 그들도 미국처럼 `멈춤'(stop) 표지가 있어 교차로에서 양보해야 할 쪽을 설정해놓았다. 대신 양보 표지가 없는 골목은 마구 밟는다. 상대방이 표지판(신호등이 아니다)을 무시하지 않으리라고 믿는 것이 신기하다. 교외는 프론티어 정신으로 새롭게 개척된 미국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교통설비가 좋지 않다.

전근대는 곡선, 현대는 직선, 후기현대(Post-Modern)는 곡선이다. 달리 말해 감성의 시대, 이성의 시대, 다시금 감성의 시대다. 현대 이전에는 골목문화였고, 현대 이후에는 신작로(新作路)문화였다가 요즘은 다시금 골목으로 돌아가고 있다. 관습의 시대, 논리의 시대, 그리고 공감의 시대라고 불러도 좋다.

크고 너른 길은, 아니 쭉쭉 뻗은 길은 이성이라는 이름을 뒤집어쓰고 폭력을 행사해왔다. 그때 신호등은 큰길을 가장 잘 다루는 장치였다. 신호등을 통해 우리는 질서를 배우고, 순응을 배우고, 통제를 배운다.

요즘 곳곳에서 신호등을 없애고 로터리 방식으로 교차로를 바꾸기 시작하는데 새로운 시절의 도래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영국은 오래전부터 라운드어바웃(roundabout)이라고 부르며 로터리를 애용해왔지만.`쪽쭉 뻗기'보다 `뺑뺑 돌기'가 나아진 시절이다. 뻗지 말고 돌자.

/충북대 철학과 교수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