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야 가라
나이야 가라
  • 김기원<시인·편집위원>
  • 승인 2018.01.10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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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원의 목요편지
▲ 김기원

관광차 나이아가라 폭포에 갔더니 현지 가이드가 그러더군요. 나이아가라 폭포 앞에서 `나이야 가라'고 큰 소리로 외치면 적어도 10년은 젊어진다고. 가이드의 재담이 분명한데도 그 말에 솔깃해지더라고요. 젊어지고 싶은 건 인간의 로망이니까요.

함께 간 일행은 폭포 낙하지점까지 거슬러 올라갔다가 돌아오는 유람선을 탔고, 배가 천둥 같은 굉음을 내며 수직 낙하하는 지점에 당도하자 약속이나 한 것처럼 큰소리로 `나이야 가라'고 외치더군요. 폭포 소리가 큰지 인간이 외치는 소리가 큰지 시합이라도 하려는 듯이 말입니다. 저 역시 눈물이 핑 돌 정도로 외쳐 됐으니까요.

부질없이 먹은 나이와 풍진에 찌든 때를 씻겨줄 것처럼 우의를 입은 머리 위로 폭포수에서 튕겨 나오는 물방울과 하늘에서 내리는 빗방울이 축복처럼 떨어졌어요. 감동적인 물세례였고 장관이었습니다.

미국과 캐나다 국경에 연접해 있는 나이아가라 폭포는 남미의 이구아수 폭포와 아프리카의 빅토리아 폭포와 함께 세계 3대 폭포로 위용을 뽐내고 있지요. 높이 50여m에 너비 1km의 웅장함도 웅장함이지만 주변 풍광과 환경이 아름답고 좋아 세계인들이 가보고 싶어 하는 관광명소 중의 하나입니다. 폭포 이름이 `나이아가라'여서 한국인들에게 각별한 사랑을 받고 있지요. 한국말처럼 들리니 친숙할 수밖에요.

더 젊게 살고 싶고, 더 오래 살고 싶은 욕망과 간절함이 있어 나이아가라 폭포에 관광 오면 체면불구하고 그렇게 `나이야 가라'고 외치는 거지요. 이왕에 나이 이야기가 나왔으니 나이 이야기 해보자구요. 사람이나 동ㆍ식물이 세상에 나서 살아온 햇수가 나이지요.

숫자임이 분명한데 그놈의 숫자가 인간의 삶을 지배하니 무섭고 치사한 게 바로 나이입니다. 나이의 많고 적음이 신체활동과 사회활동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잣대가 되고 있으니 말입니다. 이를테면 학교 가는 나이, 군대 가는 나이, 결혼하는 나이, 퇴직이나 은퇴하는 나이, 경로우대 받는 나이 등이 바로 그것입니다.

공자도 나이를 서열화해 15세는 학문에 뜻을 두는 나이(志學), 20세는 비교적 젊은 나이(弱冠), 30세는 뜻을 세우는 나이(而立), 40세는 미혹됨이 없는 나이(不惑), 50세는 하늘의 뜻을 아는 나이(知天命), 60세는 이치를 통달하고 듣는 대로 모두 이해하는 나이(耳順), 70세는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법도에 어긋남이 없는 나이(從心)라 했고 인생 칠십은 고래로 드문 나이(古稀)라고 설파했지요.

100세 시대가 되어 여건이 많이 변하긴 했지만 그래도 한 번쯤은 새겨볼 만한 인생지표입니다. 아무튼 나이가 많아질수록 죽음에 가까워진다는 건 거부할 수 없는 자연의 섭리이고 진리입니다. 나이 든 사람들이 곧잘 흥얼대는 `내 나이가 어때서'라는 대중가요도 그런 안타까움의 일단이지요.

올해도 어김없이 한 살을 더 먹었네요. 조물주가 나이만큼은 모든 사람들이 공평하게 먹도록 하여 억울할 건 없지만 하릴없이 나이만 잔뜩 먹어서 부끄럽기도 하고, 존재감과 자신감이 날로 떨어지는 것 같아 몹시 씁쓸하네요. 스탠리 데이비스는 `몇 살이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몇 살로 사느냐가 중요하다'고 했고, 파블로 피카소는 `늙어 가는 게 아니라 무르익고 있다'고 했는데 말입니다.

아무튼 태어나는 데는 순서가 있지만 죽는 데는 순서가 없으니 나이를 잘 먹어야 해요. 그래요 늦은 나이란 없어요. 늦은 마음만 있을 뿐이니 유쾌하게 살자구요. 세월 앞에 장사 없어요. 왕후장상도 재벌도 인기스타도. 하여 지금도 꿈이 있고, 할 일이 있고, 심신이 강건한 이는 진정 복인입니다. `나이야 가라'고 외치지 않아도 여전히 청춘이니까요. 그대도 그런 복인이기를.

/시인·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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