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가 있는 풍경
시(詩)가 있는 풍경
  • 안희자<수필가>
  • 승인 2018.01.09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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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 안희자

바닷바람을 맞으며 산책로를 걸었다. 겨울바람이 맵다. 낯선 길 끝에 찻집이 눈에 띄었다. 시야에 들어온 모든 풍경들이 하나같이 낮다. 시시각각 돌변하는 바람 탓인지 허름한 찻집도, 마당을 에워싼 잿빛 돌담도 한껏 몸을 낮추고 길손을 맞이한다. 긴 시간 풍화의 흔적을 고스란히 품고 있는 주변 풍경이 예스럽다. `시인의 집'이란 푯말이 보인다. 이곳은 제주도 조천읍에 있는 손세실리아 시인의 찻집이다.

외딴섬 시인의 집이 늘 궁금했다. 시인의 개인 블로그에 자주 올라오는 변화무쌍한 풍경과 고풍스런 찻집 공간, 책을 읽는 시인의 모습, 서녘 하늘을 붉게 수놓으며 장엄하게 지는 노을, 바다 위로 튀어 오르는 날것의 숭어 떼들이 신선했다. 무엇보다 실내 곳곳에 빼곡하게 꽂혀 있는 책들이 궁금했다. 거기에 한 마리 새를 형상화한 바닷가의 솟대는 무릇 그가 염원하는 시의 표상이 아니었을까.

찻집 분위기는 시인의 시만큼이나 안온하다. 난 시인이 아니지만 한번은 이곳에 들러 유유자적 차를 마시며 시에 취하고 싶었다. 은빛 조명 아래 자리를 잡았다. 발라드 음악이 고요히 흐르고, 원형의 나무기둥들이 곳곳에 있어 공간은 운치를 더했다. 눈앞에 바다가 보이는 찻집에 시(詩)가 있는 풍경이라니. 한 편의 영화 같지 않은가. 그녀가 주문한 커피를 가져왔다. 따끈한 커피 한 잔에 입 안 가득 구수함이 배어들고 얼었던 몸이 말랑말랑해진다. 그녀에게 풍경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시가 절로 써지겠다고 말했다. 글 쓰는 일을 `도둑처럼 찾아온 황홀한 업'이라 생각한다는 시인의 말이 놀랍다. 오래전 제주로 와 폐가를 고쳐 찻집을 운영해온 그녀. 몇 권의 시집을 내면서 이곳을 아름다운 명소로 만들었다. 그녀는 날마다 바다를 원고지 삼아 싱싱한 시 한 편 건져 올렸으리라. 책을 구입하고 사인을 받았다. 그는 문학은 소통이라 말한다. 시를 통해 만나는 수많은 인연이 그의 작품으로 탄생하였다. 회색 빌딩숲을 벗어나고픈 도시인들이 꿈꾸는 이곳. 한적한 섬에 이런 찻집이 있다는 것이 새롭고, 한가로이 차를 마시며 시를 접할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이곳을 찾는 이들은 시인의 찻집이라는 이색적인 풍경에 끌려 왔을 터이다. 나도 그랬다. 몇 시간 바다를 유영하듯 시집을 읽었다. `기차를 놓치다'라는 시인의 작품에 빠져 헤어날 줄 몰랐다. 시 한 편마다 사람의 아름다운 결이 새겨져 있다. 화려한 수식어도 현란한 언어의 술수도 없다. 그녀의 시 속에는 낮은 사람들을 향한 자분자분한 연민의 목소리가 들어 있다. 세상의 약자들의 마음을 읽어주는 듯 가슴을 적신다.

예민했던 사춘기 무렵 나는 시집과 소설에 심취했었다. 한파가 몰아치는 겨울이면 아랫목에 누워 끼니도 잊은 채 책을 보았다. 황순원의 소나기를 읽을 때면 마치 내가 소설 속에 주인공이 된 것처럼 얼굴은 붉게 상기되고 가슴이 두근거렸다. 또 윤동주의 시를 읊조리며 상상의 나래를 펼치곤 했다. 돌이켜보면 문학에 대한 동경심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일상을 벗어나 내게 주어진 이번 겨울여행은 특별했다. 그 섬에서의 한나절은 꿈속 같았다. 차와 시가 있는 풍경과의 만남은 메마른 감성을 채우기에 충만했다. 시를 쓴다는 건 삶의 여정을 짭조름하게 우려내는 일이다. 겨우내 그녀의 시집을 읽으며 낮은 세상 속으로 들어가리라. 그러면 그 바닷가의 시인처럼 삶이 더욱 푸르고 깊어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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