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한 수
신의 한 수
  • 이재정<수필가>
  • 승인 2018.01.09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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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 이재정<수필가>

지난 시간을 되돌아본다. 가을이 깊숙이 발을 들여놓는 시월. 농막의 풍경으로부터 먼저 계절을 예감한다. 노란 물을 들이기 시작한 층층나무를 보면서 내 시간의 흐름을 느끼곤 한다.

어디서 날아왔는지 꽃향기가 짙다. 갈꽃이 지고 있음이다. 피어날 때보다 질 때가 향을 강하게 내뿜는 법이다. 수명을 다해가며 꽃들이 바람에 향기를 풀풀 풀어대던 날이다. 농막을 들어서면서 앙증맞은 새끼고양이와 눈이 마주쳤다. 사람을 피해 달아나지도 않고 빤히 쳐다보는 게 아닌가. 놀라서 숨이 넘어가게 그이를 불렀다. 길고양이라고 했다.

그이는 사무실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거리에 있는 농막을 자주 들려본다. 그날도 주위를 둘러보는데 어린 고양이가 비틀거리며 산에서 내려오더라는 것이었다. 배고파 보이는 녀석이 불쌍하여 우유를 주었더니 금방 빈 그릇이 되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날마다 들러 밥을 주었다고 했다.

그이랑은 제법 친해져 있었다. 며칠 되지 않았는데도 가까이 와 품에 안겼다. “길냥이”에서 부르게 된 “냥이”는 모습을 감추었다가도 그이의 목소리만 들리면 쏜살같이 달려나왔다. 여기서 더불어 얻게 된 냥이 아빠다. 이렇게 식솔 하나가 늘었다.

열흘이 지난 후에 우리에게 놀랄 소식이 전해졌다. 농막의 울타리를 넘어온 옆집고양이라는 것이다. 서운하지만 주인에게 되돌려 보냈다. 녀석은 정이 들어서인지 다시 돌아왔다. 그 뒤로 아예 제집인 양 떠나질 않았다. 그분은 어쩔 수 없다며 우리가 키우라고 했다. 자신의 선택으로 주인을 바꾼 셈이다.

지금, 농막은 겨울의 중턱을 넘어서고 있다. 3개월 만에 냥이는 어른이 다 되었다. 밖의 차탁에 앉아 차를 마실 요량으로 난로에 불을 피우면 얼른 자리를 잡는다. 불기가 잡혀 열을 내면 세상 편한 자세가 따로 없다. 배를 쭉 깔고 늘어지게 낮잠을 잔다. 행여 깰세라 우리는 발걸음 소리도 낮춰준다. 이렇게 호사를 누리게 해주는 그이를 따를 수밖에 없지 싶다. 발밑에서 노느라 거치적거리는 녀석을 보는 그이의 눈에서도 꿀 떨어진다.

냥이의 선택은 내가 보기에 탁월했다. 옆집의 주인은 먼 거리에 산다. 강아지를 키우고 있는데 일주일에 두 번이나 올까 말까 한다. 난로의 따뜻함을 맛본다는 건 꿈꾸지도 못할 일이다. 바둑으로 보면 현명한 한 수(手)였다. 막상막하인 경기에서 한 수를 잘 둔 단수(單手)다. 그야말로 신의 한 수였다.

신의 한 수는 일본만화인 히카루의 바둑에서 유래한 신조어다. 요즘은 기상천외한 묘책이나 먼 앞을 내다본 행동이 딱 맞아떨어졌을 때 쓰이는 단어가 되었다. 흑돌과 백돌을 바둑판 위에 번갈아가며 집을 많이 지어야 이긴다. 한번 놓인 돌은 절대로 무르거나 움직일 수가 없다. 흑과 백이 서로 더 많은 집을 짓는 과정에서 언쟁이 생기기도 하고 치열한 경쟁이 될 수도 있다.

바둑에서의 한 수의 가치는 초반에 크다. 미미해 보여도 전체가 흔들릴 수도 있다. 바둑 한판을 결정짓는 단수(單手)가 되기도 악수(惡手)가 되기도 한다. 최선의 한 수는 인생에서도 마찬가지다. 기로에서 어느 길을 가느냐에 따라 한 사람의 삶이 통째로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 수는 냥이의 선택처럼 살면서 우리 앞에 우뚝 나타날 때가 있다.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잡을 때 신의 한 수가 되는 것이다. 내 앞에 홀연 놓일 한 수가 아직 남아 있을까. 기꺼이 놓치지 않을 한판, 그 한 수가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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