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등과 나눔 세상의 그 아름다움을 위하여
평등과 나눔 세상의 그 아름다움을 위하여
  • 정규호<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 승인 2018.01.09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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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단상
▲ 정규호

영화 <1987>은 눈물이었습니다. 시대의 한복판에서 처절했던 아픔의 기억이 소스라치듯 되살아나는, 그리하여도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부끄럽지 않은 희망의 발돋움이었습니다.

거기 허구의 인물 연희(김태리 분)의 “그런다고 세상이 달라지나요?”라는 절망에 `그래야 세상이 달라질 수 있고, 또 달라지고 있다.'고 화답할 수 있는 용기에서 비롯되는 그런 눈물이었습니다.

이 땅의 영세상인, 그리고 자영업자 여러분. 그리고 겨우겨우 집칸이나마 장만해서 입주자의 권리를 누리고 계신 아파트 주민 여러분. 우리는 그런 험난한 길을 헤치며 마침내 이곳까지 왔습니다. 뜨겁게 달궈진 아스팔트를 마다하지 않고, 엄동설한 삭풍도 견뎌내며 1987년은 2016년과 2017년을 관통하는 촛불이 되어 혁명의 불꽃으로 되살아났습니다. 그리고 현실이 되어버린 최저임금 인상에서 다시 찢어지는 갈등과 고통을 만나고 있습니다. 영세상인과 자영업자, 그리고 겨우 내 집 마련의 소원을 이룬 사람들은 따지고 보면 여전한 사회적 약자이며, 시장경제의 틀에서도 별 볼일 없는 서러운 존재들입니다. 아직도 가난하며 어려운 처지를 한탄할 수밖에 없는 보통의 평범한 사람들입니다.

영화 <1987>을 보면서 유난히 가슴 뛰던 장면은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함께 거리로 뛰쳐나오거나 박수를 쳐주며 용기를 북돋워주고, 경찰 백골단에 쫓기는 시위학생들을 숨겨주던 보통 사람들의 뭉쳐진 연대의 힘. 그 힘이 이 땅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켜냈고, 그 단단한 투쟁의 기억이 2016년과 2017년을 관통한 촛불혁명을 만들어낸 원동력입니다. 1987년은 정치적인 자유의 확대와 참 민주주의의 실현을 갈망했던 시대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그로부터 30여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상상할 수 없는 질곡을 헤치고 나와 사회경제적인 평등과 분배의 가치를 새롭게 만들어 가는 입구에 서 있습니다.

아! 그러나 우리는 지금 최저임금 인상이라는, 반드시 극복해야 할 인간적 처우를 둘러싸고 또다시 분열의 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 편의점 알바생이 최저임금을 요구하는 당연함을 비닐봉투 도둑으로 몰아대는 파렴치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고, 인건비 부담을 이유로 졸지에 아파트 경비원을 쫓아내는 몰염치한 민 낯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비정규직 신분인 제조업 파견 근로자들에게는 시간외 근무를 못하게 하는 방식으로 사실상 임금이 줄어드는 위기의식을 조장하며 불안과 분열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급기야 감원과 해고라는 극단적 방법을 통해 그나마 일자리조차도 위협하는 지경에 이르고 있습니다. 물론 최저임금의 갑작스러운 인상으로 인해 기업과 노동시장 수요공급의 균형 불안이 나타나고 있다는 원론적 입장도 그럴 듯합니다. 그리고 여전히 힘겹기 그지없는 중소기업과 영세상인, 자영업자에 대한 구조적 허약성 개선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지적도 옳습니다. 심지어 최저임금을 맞추다 보면 나까지 죽게 될 수도 있겠다는 절체절명의 위기감도 이해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최저임금은 올리면서 고용도 줄이지 않고, 또 국민의 기본권과 기초적 삶의 가치를 보장하면서 생산성을 증대시키는 일은 서로 대척점에 있는 평행선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동안의 우리는 쉬지 않고 일해야 잘 살 수 있고, 또 그나마 겨우겨우 살아남을 수 있다는 압축 성장에 너무 길들어 있는 건 아닌지 곰곰이 따져봐야 할 일입니다.

아니, 그보다 먼저 우리도 한때는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처절하게 몸부림쳤으며, 쫓겨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 했던, 지금의 불안과 위기의 낮은 사람들과 같은 처지였음을 기억하는 일이 공존의 평화를 만드는 일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평등과 나눔, 그 낮은 데로 임하는 착한 사마리아인으로 모두가 살아가는 일. 함께 들었던 촛불이 제 몸을 태우고, 눈은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면서 세상을 아름답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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