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고향에는
그리운 고향에는
  • 최명임<수필가>
  • 승인 2018.01.08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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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 최명임

바람이 빈들에서 하릴없이 놀아난다. 가으내 동동거리더니 동면의 계절엔 할 일이 없는 게다. 곱게라도 놀던지 찬기는 왜 몰고 와 심술인지, 내리던 비가 함박눈이 되어 휘날린다.

그때 겨울에는 장판이 꺼멓게 익은 아랫목에 배를 깔고 책 한 권 펼쳐들었다.

줄기차게 궁금증을 쫓아가다 졸음 오면 등이 후끈거리도록 한잠 달게 자고, 출출하면 아궁이에 묻어 둔 고구마로 배 채우고, 도로 누워 몽상에 들고, 그래도 심심하면 까치 우짖는 회색 하늘 올려다보았다. 문풍지 파르르 떨던 섣달 사나흘께 메칼 없이 방문을 여닫던 겨울이 추억의 갈피 속에 들어 있다.

바람도 나도 한가한 겨울의 중턱에 머물러 있다. 아랫목도 윗목도 없는 방 침대에서 책을 펴고 엎드렸더니 암만해도 그 기분이 나지 않는다. 온돌방 뜨끈한 아랫목이 그립다.

`무작정 여행'이 어떠냐고 아들에게서 전화가 왔다. 이 짬에 고향 집을 다녀오자고 불각시리 마음이 동했다.

청주로 시집온 지 10여 년은 일 년에 한 번, 어떤 때는 이 년에 한 번 친정나들이를 하였다. 명절 나들이는 꿈도 못 꾼 것이 차례상 물리기도 전에 손님이 들이닥쳤다. 그 와중에 친정 나들이가 어인 말이냐고 하던 시대를 살았고 아이 셋을 낳아도 어머니의 손맛을 보지 못했다. 그래선지 모녀 상봉은 애틋했다.

밤을 잊고 이야기를 하다 보면 어느새 새벽닭이 울고, 어린 딸이 행여 힘든가 싶어 봉사 3년, 벙어리 3년 살다 보면 세월이 간다고 다독거리셨다. 지금은 아침에 떠나면 고향에서 이른 점심을 먹을 수 있는데 기다려주는 어머니가 아니 계신다.

야트막한 돌담 사이로 들어서니 고향 집의 정경이 눈물겹다. 깨진 항아리 조각과 내려앉은 서까래, 구실을 잃어버린 아궁이가 나를 맞는다. 시간은 참 많은 것을 거두어 가버렸다. 누렁소 엉덩짝 후리던 소리도 사라지고, 문풍지도 삭아 바스러지고, 백 년을 내다보던 감나무도 많이 늙었다. 산 같은 아버지의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그런 새끼들을 위해 아버지가 애면글면하셨던 곳이다.

오늘 같은 날 배를 깔고 누웠던 아랫목과 고구마 익는 아궁이, 회색 하늘을 물고 우짖던 까치가 시공을 넘어와 나를 반긴다. 아, 언젠가는 이 그리운 흔적들조차 모두 사라지고, 나도 사라지고, 이야기도 사라지면 저기 윗배미 다랑논이 풀숲이 되었듯이 새들이 찾아들고 풀벌레 기웃대는 숲으로 남을 테지.

우물을 들여다보다 눈물 한 점 떨어진다. 그리움이다. 우물 안은 사람 손을 탄 지 오래, 풀잎사귀 유들지고 물이끼는 푸른 핏빛처럼 선명하다. 지금도 변함없이 솟아오름은 아마도 놓고 가신 어머니의 염원이리. 천 년을 갈 것처럼 시멘트 담을 올렸던 아버지는 백 년도 못 살고 가셨지만, 우물은 여전히 굳건하다. 두레박으로 물을 퍼 올려 잡초에다 훠이훠이 뿌렸다. `부디 너희라도 무성하거라-.'

잿빛 하늘을 거스르고 막 부슬비가 그쳤다. 아궁이가 식어버린 지 오래 등 붙일 방은 없지만, 시름없는 평온이 느껴진다. 인연과 시간과의 이별은 어쩔 수 없어도 추억은 내 것이다. 다시 오리라. 돌아서는 꼭뒤로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인자 가모, 언제 또 올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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