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의 중심
우주의 중심
  • 권재술<전 한국교원대 총장>
  • 승인 2018.01.04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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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시간의 문앞에서
▲ 권재술

오랜 옛날부터 사람들은 이 세상의 중심이 지구라고 생각해 왔다. 지구가 세상의 중심이고 이 중심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것은 얼마나 가슴 벅찬 일인가? 그런데 사람들이 지구 이곳저곳을 다녀보고 별을 관찰하면서 지구가 세상의 중심이 아니라는 의구심이 생겼다.

하늘을 관찰해 보면 모든 별들은 하루에 한 바퀴씩 지구 둘레를 돈다. 오늘 저녁 9시에 동쪽 하늘에 보이던 별은 내일 9시에도 같은 자리에서 다시 보게 된다. 지구가 세상의 중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좀 더 자세히 관찰해 보면 모든 별이 다 그런 것은 아니다. 어떤 별은 매일 조금씩 다른 위치에 나타난다. 이런 별들을 떠돌이별 또는 행성이라고 한다.

천문학자들은 행성의 운동을 자세히 관찰하면서 이들이 지구 둘레를 도는 것이 아니라 태양의 둘레를 돈다는 결론에 이른다. 즉, 행성들은 태양 둘레를 돌고 태양은 다시 지구 둘레를 돈다고 말이다.

하지만 더 자세히 관찰해 보면 이런 방식으로는 행성의 운동을 만족스럽게 설명할 수 없다. 코페르니쿠스는 행성만이 아니라 지구도 태양 둘레를 돈다고 생각하면 행성들의 운동이 잘 설명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이것은 지구가 세상의 중심이 아니라는 말이 된다. 사람들은 지구가 중심이 아니라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래서 온갖 과학적(?) 궤변을 동원하여 지구 중심설을 붙잡고 있었다. 하지만 진실은 밝혀지게 마련이고 결국 지구가 세상의 중심이 아니고, 태양이 중심이라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래, 이제 세상의 중심은 태양이다. 좀 아쉽지만 그래도 그 많은 별 중에 우리의 별인 태양이 우주의 중심이라는 것은 얼마나 위안이 되는가? 하지만 별들에 대한 지식이 쌓이면서 태양이 우주의 중심이라는 위안마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태양은 수많은 별들로 이루어진 큰 은하에 속에 있는 아주 작은 별에 불과하며, 태양은 그 은하의 중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은하의 중심에서 2만6000광년이나 떨어져 있는 은하의 변방에 있는 보잘 것 없는 작은 별에 불과하다. 태양은 더 이상 우주의 중심이 아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우주에는 우리 은하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은하보다 더 큰 은하도 더 작은 은하도 수없이 많다. 별들이 모여 은하가 되고, 은하들이 모여 은하군이 되고, 은하군이 모여 은하단이 되고, 은하단이 모여 우주가 된다. 말할 것도 없이 우리의 은하가 우주의 중심은 아니다. 우리의 은하군이 우주의 중심인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우리의 은하단이 우주의 중심인 것도 아니다. 우리는 우주의 변방 중의 변방에 있는 티끌 같은 존재다.

그렇다면 우주의 중심은 도대체 어디란 말인가? 물체들이 분포해 있을 때 중심은 물체들의 평균 위치를 말한다. 이것은 물체들이 유한한 공간에 분포해 있을 때 그렇다. 지구의 중심은 지구표면의 모든 점에서 동일한 거리에 있는 점이다. 태양계의 중심은 태양이다. 이와 같이 유한한 공간에서는 중심을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우주라고 하면 문제가 달라진다. 우주는 무한하기 때문이다. 무한한 우주의 중심은 어디일까? 우주의 중심은 모든 곳이다. 지금 내가 서 있는 곳이 바로 우주의 중심이다. 어떤 면에서 중심은 실체가 아니라 관념일 뿐이다.

우주는 무한하기 때문에 모든 곳이 우주의 중심이 되는 것이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우주를 관찰하면서 지구가 우주의 변방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나라는 존재는 너무나 작고 보잘 것 없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 다시 우주를 더 깊이 알게 되니 이 지구, 내가 서 있는 이곳이 우주의 중심이 되었다. 빅뱅이 137억 년 전 바로 내 코앞에서 일어났다. 이 얼마나 놀라운 사실인가? 내가 우주의 중심이라는 사실, 이보다 더 놀라운 축복이 어디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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