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절한 균형
적절한 균형
  • 박명애<수필가>
  • 승인 2018.01.04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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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 박명애

코끝이 맵다. 오랜만에 찾은 공원은 한적하다. 젖은 땅 딛는 발자국 소리가 나지막하게 울릴 뿐. 이따금 잔바람이 숲을 지나간다. 꽁꽁 언 연못가 마른 갈대도 서걱이는 참나무 잎도 부드럽게 얼레고 멧새 깃털도 가만가만 쓰다듬는다. 모든 것이 멈춘 듯 고요한 숲을 바람이 기르고 있다. 한 걸음 앞서 걷던 딸애가 환하게 웃는다. 내민 손끝엔 살짝 터진 붉은 열매가 들려 있다. 무채색 숲 산수유 열매는 응축된 시간들을 뜨겁게 담고 있는 듯하다. 건물 숲에 갇힌 작은 못도 그리 오랜 세월을 품고 있다.

딸애는 상상이 안 된다고 했다. 딸애의 기억에 두꺼비 생태공원은 시골풍경으로 남아있다. 이곳은 낮은 산자락이 흘러내려 모아진 들이었다.

땅 생김 따라 일구어진 논밭이 정겹게 어우러져 있었고 그들과 실핏줄같이 연결된 물길의 근원은 원흥이방죽이었다.

소금쟁이가 미끄러지듯 물 위를 건너가던 한낮, 연못가는 두꺼비알들로 가득했었다. 아이 고집에 채집해온 알들은 앞다리가 나오고 뒷다리가 나오더니 어느 밤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부레옥잠만 덩그렇게 남아있는 옹기를 안고 온종일 울었던 아이는 지금 이 풍경이 무척 낯설다고 안타까워했다.

개발과 보존 사이 첨예한 갈등을 빚던 끝 서로 양보하여 겨우 보존된 원흥이 못은 주변을 공원화하며 사람과 두꺼비에게 소중한 쉼터가 되었다. 두꺼비와의 공존을 택한 사람들은 더욱 쾌적한 환경을 선물 받았고 두꺼비들은 어려우나마 생명을 지탱할 수 있는 근원을 지킬 수 있었다. 사람과 두꺼비가 균형을 이루며 조화로운 삶을 살고 있다고 믿게 만든다. 하지만 원흥이못에서 올챙이 시기를 거쳐 변태한 두꺼비들은 구룡산으로 무리지어 이동할 때마다 로드킬을 당한다. 두꺼비 입장에서 보면 일방적인 내몰림이다. 사람 입장에서만 공존이며 조화인 셈이다.

그나마 생태통로로 이동하는 두꺼비들이 있어 멸종위기는 면하고 있으니 두꺼비들에게 생태통로는 한 줄기 빛이라 할 수 있다. 슬프지만 소설의 표현을 빌리자면 적절한 균형이다.

`적절한 균형(A Fine Balance)'은 하층민의 삶에서 벗어나고자 몸부림치는 네 사람의 삶을 그린 인도 소설이다. 소설에서 말하는 적절한 균형이란 절망 속에서도 끊임없이 삶을 지탱하게 만드는 희망에 대한 역설적 표현이다.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기 위해 희망과 절망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려 안간힘을 다하는 건 미물이나 사람이나 매한가지다.

요즘 갈등을 빚는 최저임금제도 누군가에겐 적절한 균형이다. 오랜 시간 경제성장을 위해 미뤄두었던 저임금의 제도적인 해소는 삶의 균형을 맞추는 시작점이라고 볼 수 있다. 딸애도 상경하면 그 경계에서 치열한 시간을 살게 되리라. 새로 바뀌는 제도들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알 수 없지만 진정한 평형을 이루어 조화롭게 상생하는 사회로 발전했으면 좋겠다. 원흥이를 지켜낸 이들의 기원이 담긴 바람개비가 소리를 내며 돌아간다. 멧비둘기가 날아오른 하늘은 푸르고 깊다. 두꺼비들도 이 땅의 젊은이들도 힘내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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