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과 함께 -죄와 벌
신과 함께 -죄와 벌
  • 법원<청주 능인정사 주지 스님>
  • 승인 2018.01.04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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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자의 목소리
▲ 법원

영화 `신과 함께'는 용서를 구할 용기를 내지 못해 맘고생이 많았던 그러나 끊임없이 노력하며 정직하게 살았던 소방관 김자홍(차태현 분)이 화재현상에서 사람을 구하고 사망한 이후 저승에서 49일 동안 7번의 재판을 거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가 줄거리이다. 한국 불교와 설화 등을 소재로 한 이 영화는 동양적 내세관이라는 큰 틀과 효와 권선징악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업이 지어지면 그 결과가 나타나게 된다. 그것을 과보라 한다. 업과 과보의 관계는 식물에 비유해서 설명될 수 있다. 씨앗을 심으면 싹이 나고 자라서 열매가 열린다. 열매의 맛과 성질은 그 씨앗을 따른다. 마찬가지로 업을 지으면 그것은 성숙하게 되고 반드시 과보를 초래한다. 과보의 성질은 전적으로 업의 성질에 좌우된다.

업이 결정되면 그 과보는 피할 수 없다. 그것은 절대로 그냥 소멸되지 않는다. 언젠가는 업을 지은 사람에게 그 결과가 나타난다. 여기에는 예외가 없다. 법구경에서는 이것을 `하늘에도 바다에도 산중 동굴에도 사람이 악업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곳은 아무데도 없다.'라고 표현하고 있다.

업은 개인의 의지작용에 의해 짓는 것이므로 자신이 지은 업을 다른 존재에게 이전시킬 수 있다거나 다른 사람이 지은 업의 과보를 자기가 대신 받을 수 없다. 선업의 과보일지라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업의 원리를 `자신이 짓고 자신이 받는 원리', 즉 자작자수(自作自受)의 원리 또는 자업자득(自業自得)의 원리라고 한다.

업이 이뤄지면 그 성질에 따라 과보가 있게 된다고 했지만 산술적인 방식으로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두개의 똑같은 업을 지었다 해도 그 결과는 동일하지는 않다. 똑같은 보시를 하더라도 보시를 누구에게 하는가에 따라 과보는 다르다. 음식물을 짐승에게 주는 것보다는 사람에게 주는 것이 결과가 크고, 범부에게보다는 수행자에게 주는 것이 큰 과보를 초래한다. 수행자에게 하는 보시보다는 도를 이룬 붓다와 같은 존재에게 하는 것이 더 큰 과보를 받을 수 있다. 짐승을 죽여도 죄가 되지만 사람이나 성인을 죽이면 그 죄는 더욱 무겁다.

업을 지으면 과보를 받게 되지만 결과는 항상 동일하지는 않다. 수많은 변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업을 지으면 어떤 과보를 받는다고 정확하게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대체로 선업을 지은 사람은 천상이나 인간계, 즉 선도(善途)에 태어나고, 악업을 지은 사람은 주로 지옥, 아귀 축생의 세계, 즉 악도(惡途)에 태어난다고 말할 수 있다. 경전에 의하면 악업을 지은 사람은 설사 인간계에 다시 태어난다 하더라도 나쁜 조건 속에 있게 된다. 과거에 지은 업은 현재의 존재를 만들었고, 현재 짓는 업은 미래의 존재를 만든다. 과거의 존재와 현재의 존재는 다르지만 과거의 존재가 지은 업의 결과는 현재의 존재가 받게 된다.

밀린다판하에서 나가세나 장노는 이것을 간단하게 한 마디로 결론을 내린다.“다시 태어나는 자는 죽은 자와 다르다. 그러나 그는 죽은 자로부터 나온다. 그러므로 그는 죽은자가 지은 업에서 벗어 날 수 없다.”

영화에서 삶의 가치를 살인, 나태, 거짓, 불의, 배신, 폭력, 천륜 7가지로 평가 받는데 나는 부끄럼 없는 삶을 살고 있는지 생각해 보니 영 자유롭지 못하다.

끝없이 태어나고 죽음을 반복하는 긴 여정이지만 삶을 부여 받으면 열심히 수행정진하고, 많이 사랑하고, 많이 베풀고, 많이 용서하는 것만이 환생하는 길이며 윤회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길이다.

염라는 `이승에서 진정으로 용서받은 이는 저승에서 심판할 이유가 없다'라며 무죄판결을 내린다.

시작하는 2018년을 후회없이 잘 살아야겠다. 언젠가는 우리도 심판을 받을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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