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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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지민 기자
  • 승인 2018.01.03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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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의 시 읽는 세상

고 영 민

 

중국에는 편지를 천천히 전해주는 느림보 우체국이 있다지요 보내는 사람이 편지 도착 날짜를 정할 수 있다지요 한 달 혹은 일 년, 아니면 몇 십 년 뒤일 수도 있다지요 당신에게 편지 한통을 보냅니다

도착 날짜는 그저 먼 훗날 당신에게 내 마음이 천천히 전해지길 원합니다 당신에게 내 마음이 천천히 전해지는 걸 오랫동안 지켜보길 원합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수십 번, 수백 번의 후회가 나에게 왔다가고 어느 날 당신은 내가 쓴 편지 한통을 받겠지요 겉봉을 뜯고 접은 편지지를 꺼내 펼쳐 읽겠지요 그때 나는 지워진 어깨 너머 당신 뒤에 노을처럼 서서 함께 편지를 읽겠습니다

편지가 걸어간 그 느린 걸음으로 내내 당신에게 걸어가 당신이 편지를 읽어 내려가며 한 홉 한 홉 차올랐던 숨을 몰아 내쉬며 손을 내려놓을 즈음 편지 대신 그 앞에 내가 서 있겠습니다


# 이따금 낯선 여행지에서 느림보 우체국을 만납니다. 1년 후에나 전달해준다는 우체통은 누군가의 묵은 시간까지 동봉해 전해줄 것입니다. 우체통 안에서 붉게 물들어갈 서툰 손글씨에는 이별의 아픔도 있을테고, 희망을 전하는 미소도 담겨 있을 것입니다. 그 애틋한 마음의 통증도 느린 시간을 밟고 가는 동안 깊어지고 깊어져 그대에게, 나에게 닿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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