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를 잊은 그대에게
詩를 잊은 그대에게
  • 정정훈<청주시 서원구 세무과장>
  • 승인 2018.01.03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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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 정정훈

2년 전 동장으로 근무할 때다. 동(洞)에는 통장협의회, 주민자치위원회 등 여러 직능단체가 활동하고 있고 구성원의 다수가 사오십대 여성들이다. 동이 행정단위의 작은 지역사회로서 그 안에서도 보이지 않게 서로 다른 성향으로 인한 갈등이 존재하고 내 편, 네 편이 존재한다.

연말에 어느 단체 회의가 있던 날, 동장으로서 소속 구성원들에게 한 해의 수고를 위로하고 내일의 발전과 행복을 기원하는 의례적인 멘트의 인사말 대신 도종환 시인의 `내가 사랑하는 당신은'이란 암송 시 한 편을 들려줬다.

`내가 사랑하는 당신이 꽃이라면 꽃피우는 일이 곧 살아가는 일인 콩꽃 팥꽃이었음 좋겠어 (중략)/이 세상의 어느 한 계절 화사히 피었다 시들면 자취 없는 사랑 말고저무는 들녘일수록 더욱 은은히 아름다운 억새처럼?/늙어갈 순 없을까 (중략)'

한 해를 돌아보는 길목에서 동네 사람들끼리의 작은 반목과 갈등을 접고 포용의 마음을 갖자는 의미를 전달하고 싶어서였는데 참석했던 몇 분이 울컥했다는 반응을 보였다. 때로는 많은 말보다도 시 한 편이 주는 위로와 감동이 더 큰 울림으로 다가올 때가 있다.

처음 시를 암송하기 시작한 건 스무 살이 채 안 된 즈음에 누군가를 짝사랑했던 시인이 그 애절한 마음을 담아 편지로 보냈다는 유치환 시인의 `행복'이란 시를 만난 후부터다. 당시에는 연말이면 손 편지나 카드를 만들어 우표를 붙여 우편함에 넣고는 설레는 마음으로 그 누군가에게 전해지기를 기다렸던 시절이니 시인의 마음에 감정이입이 돼 위로가 되고 내면의 성숙을 이루는 계기가 된 듯하다.

이후 공감되는 시를 만나면 암송을 하는 습관이 생겼다. 반복해서 외운 시는 일부러 기억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운전할 때나 혼자일 때 자신과의 대화처럼 중얼거리곤 한다.

아이 셋을 두고 직장과 학업을 병행하던 때, 만족을 모르고 쫓기듯 달리기만 했던 격변의 시기에는 류시화 시인의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라는 시를 만나 채워지지 않는 갈증을 해소하기도 했다.

이제 세고 싶지 않은 나이가 되고 보니 집에서든 직장이든 아등바등하지 않아 좋긴 한데 가끔은 쓸쓸한 느낌일 때가 있다. 아이들과는 일상을 주로 문자로 주고받을 뿐 얼굴을 마주하기가 쉽지 않아 이젠 가족이 일상을 함께 하기보다는 마음의 울타리로 존재하는 듯해 허허롭다. 이럴 땐 정호승 시인의 `수선화에게'를 부르다 보면 혼자여도 혼자가 아니라서 좋다.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중략)/산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퍼진다'

시는 사랑, 외로움, 그리움, 슬픔 여러 다양한 감정들을 안아주고 위안이 되고 견뎌낼 수 있는 희망이 돼 주기도 한다. 누구나 시를 쓰는 시인이 되지는 못하지만 시인의 절절한 마음이 전달되어 감성을 울리고 감동받는다면 독자 입장으로도 충분히 행복하지 않을까. 이런 감동 몇 편 품어두고 가끔 소리내어 만나보라고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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