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날을 위해
새날을 위해
  • 이창옥<수필가>
  • 승인 2018.01.01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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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 이창옥

모처럼 오전이 여유롭다. 베란다 창을 건너온 햇살이 천장까지 길게 자란 선인장의 모습을 거실바닥을 화폭 삼아 멋지게도 그려놓았다. 잠시 후면 그늘에 가려 사라질 그림자 그림이지만 소파에 깊숙이 앉아 내가 그린 그림인 양 바라본다.

이렇게 오늘처럼 볕이 좋은 날에는 같은 듯하지만 조금씩 달라지는 그림을 감상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어느새 그림이 조금씩 사라지고 있다. 서둘러 몸을 일으켜 베란다 정원으로 나갔다. 햇살을 담뿍 머금고 있는 다육이들 모습에 눈이 호사를 누린다. 그중 다육화분 하나를 옮겨 거실 탁자에 올려놓았다. 마른 잎 정리를 해주기 위해서이다. 오늘 간택된 녀석은 이름도 거창한 `캐시미어 바이올렛'이다. 커다란 자색 꽃다발을 묶어 놓은 것 같은 모습이 볼수록 매력이 있다. 식물이라면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던 남편도 이 녀석을 보면 멋지다고 감탄사를 아끼질 않는 것을 보면 거창한 이름값을 하는 것 같기도 해서 내심 흐뭇하다.

붓과 핀셋을 집어들고 의식을 치르듯 조심조심 마른 잎을 털어냈다. 바싹 말라버린 잎들이 신문지위로 우수수 쏟아져 내린다. 생명력을 다한 잎은 바스락거리는 소리도 가볍다. 어쩌면 수액을 듬뿍 머금고 싱그러움을 뽐낸 한 시절을 미련 없이 털어낸 가벼움일 터였다. 마른 잎이 떨어져야 비로소 새 생명인 새싹을 돋아나게 할 수 있는 희망을 알고 있기 때문이리라. 그게 자연의 섭리일 터였다. 마른 잎들은 식물이 하는 아름다운 마무리인 셈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한해가 저물고 새해가 시작됐다. 늘 이맘때면 마무리 못한 일들과 생각들이 털어내지 못한 마른 잎처럼 온몸에 매달려 있는 듯하다. 미련 일터였다. 미련임을 알면서도 훨훨 털어 내지 못하는 이유는 지나온 날들에 대한 집착 때문이리라. 그래서 매번 비슷한 느낌과 회한으로 한 해를 보내고 맞이한다.

지난 한해는 게으르게 하루하루를 살아왔다. 그래서 털어내지 못한 마른 잎처럼 온몸에 덕지덕지 미련과 후회들이 매달려 있는지도 모른다. 마른 잎 정리를 마친 `캐시미어 바이올렛'의 모습이 눈부시다. 그 모습이 부럽기도 하고 한편 게으름만 피우며 시간에 밀리듯 살아온 내가 부끄럽기도 하다.

그럼에도 법정스님의 글귀로 쓰라린 마음을 위로받으려 한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살아온 날들에 대해 찬사를 보내는 것, 타인의 상처를 치유하고 잃어버렸던 나를 찾는 것, 또 아름다운 마무리는 낡은 생각 낡은 습관을 미련 없이 떨쳐버리고 새로운 존재로 거듭나는 것, 그러므로 아름다운 마무리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다.”

새로운 날들을 위해서 게으르게 살아온 날들에 대해 찬사를 보내려 한다. “집안이 조금 엉망이어도 살만했어. 반찬이 부실해도 맛있게 먹어준 가족들이 있으니 고마웠지. 무엇보다 불경기가 심한데도 가게 문 안 닫고 잘 이겨 냈으니 얼마나 잘한 일이야. 갱년기 때문이었다고 변명해도 괜찮아. 누가 뭐래도 너는 잘살아왔어. 아주 훌륭해” 다시 뛰자 201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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