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술년, 희망의 역사를 쓰자
무술년, 희망의 역사를 쓰자
  • 연지민 기자
  • 승인 2018.01.01 19: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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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 연지민 취재3팀장(부국장)

연말과 연초에 눈길을 끈 영화가 있다. `기억의 밤'과 `1987'이다. 두 영화는 어두웠던 대한민국의 역사 파편을 그려내며 과거를 통해 역사를 환기시키고 있어 주목되는 작품이다. 특히 1987년과 1997년이라는 시간과 공간에 초점을 두고 한국의 역사를 바라볼 수 있다는 점에서 영화가 주는 메시지는 두렵기까지 하다.

먼저 개봉했던 영화 `기억의 밤'은 1997년 IMF 외환위기를 배경으로 국가와 개인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기억을 잃어버린 밤에서 출발하고 있는 이 사건은 국가파산 위기상황에서 수없이 많은 가족이 해체되고 죽음으로 몰아넣은 현실을 청년 강하늘을 통해 보여준다.

돈 때문에 살인자가 된 청년이 20년 동안 영원히 기억하고 싶지 않은 그날의 기억을 지워낸 채 살아가는 모습에서 감독은 대한민국에 엄중하게 경고하고 있다. 그날을 기억하라고. 제발 잊지 말라고.

`기억의 밤'이 자본주의가 빚어낸 역사의 비극이라면 영화 `1987'은 독재의 그늘에서 벌어진 정치비극사이다. “책상을 턱 치니 억하고 죽었다”는 말로 대변되었던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시작으로 이한열 열사의 죽음으로 이어지며 `6월 항쟁'의 과정을 보여준다. 국가라는 이름 아래 벌어진 폭력과 남북 이념대립이 우리 정치사는 물론 국가발전을 얼마나 후퇴시켰는지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선량한 시민들의 피로 얻어낸 `6월 항쟁'은 대통령직선제라는 결과를 가져오면서 한국 정치사에 새로운 역사를 썼던 사건이다. 하지만 우린 2017년을 또 어떻게 보냈던가를 생각해보면 역사에서 진화란 없다는 말이 맞다.

두 영화를 관람하고 나오며 밀려오는 두려움에 소름이 돋았다. `기억의 밤'에서처럼 파산위기의 국가를 살리자고 장롱 속 금반지를 내놓았던 그날을 잊고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경제가 회복되면서 물질이 만능인 시대로 급격히 회귀하고 있는 작금의 현실은 제2의 외환위기 초래도 간과하지 못할 상황이다.

경제 못지않게 정치 현실도 바닥이다. 영화 `1987'은 한국의 정치현실을 감지할 수 있다. 군사정권을 끝내고도 30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한국의 정치는 당쟁에 권력 싸움만 되풀이하고 있다. 변화를 외치던 시민들의 목소리는 여전히 권력자의 귓등 밖에 떠돌며 개, 돼지로 남아있다는 자괴감을 떨칠 수가 없다. 경제선진국으로 자평하면서도 후진정치로 미래를 발목 잡은 정치권은 여전히 뒤로 가는 역사를 쓰고 있다.

국가파산 20년 전과 정치시민혁명 30년 전, 우리는 얼마나 진전했을까. 생각해보면 제자리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채 되풀이되는 역사의 수레바퀴에 올라탄 기분이다. 결국 한걸음 더 나아가며 되풀이할 것인가, 제자리에서 되풀이할 것인가, 아니면 뒤처지면서 되풀이할 것인가만 남았을 뿐이다.

지난한 한해가 가고 2018년 황금개띠 해가 시작되었다. 차가운 설산 위로 붉은 태양이 솟아오르고, 수평선 너머에선 깊은 바다를 뚫고 오른 태양이 신새벽의 장엄함을 선사했다. 추운 날씨에도 많은 사람이 새해의 타종 소리를 듣고, 힘든 해맞이 길에 나서는 것도 각오를 새롭게 다지기 위한 자신만의 의례일 것이다.

무술년 첫 걸음은 지난 것을 돌아보고 새롭게 마음가짐을 다지는 일이다. 시작과 끝에는 매듭이 있다. 어제와 오늘을 구분하는 매듭은 한편으로는 미래로 거는 연결점이기도 하다. 영화를 `영화보기'로만 끝낼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우리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과거는 과거로만 있지 않는다. 희망을 쓰기 위해 꼭 기억해야 할 우리의 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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