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멸의 존재
필멸의 존재
  • 권재술<전 한국교원대 총장>
  • 승인 2017.12.28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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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시간의 문앞에서
▲ 권재술

그리스의 위대한 서사시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에서 호메로스는 인간을 필멸(mortal)의 존재로, 신을 불멸(immortal)의 존재로 부르고 있다. 인류 최초의 서사시로 알려진 길가메시 서사시도 불멸을 추구하는 인간이, 필멸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숙명을 노래한 것이기도 하다. 모든 존재는 태어남이 있고 그다음에는 죽음이 있다. 죽음이 없는 존재는 존재일 수 없다. 존재 전부인 이 우주도 태어남이 있고 죽음이 있다. 이것이 현대 과학이 도달한 위대한 깨달음 중의 하나이다.

태어남이 있으면 반드시 죽음이 따르기 마련이다. 이 태어남과 죽음 사이의 시간을 수명이라고 부른다. 인간의 수명을 단순히 표현하여 100년이라고 하자. 이 100년은 모든 수명을 판단하는 기준이 된다. 이 100년을 기준으로 수명이 길다 혹은 짧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대부분 동물은 인간의 수명보다 짧다. 학이 천 년을 산다고 하지만 학의 실제 수명은 50년도 못된다고 한다. 인간보다 오래 사는 동물로는 거북(150년), 북극고래(200년), 대양백합조개(500년) 등이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 동물은 인간보다 오래 살지 못한다.

이제 생물에서 무생물로 넘어가 보자. 무생물이 무슨 수명이 있느냐고 생각할는지 모른다. 하지만 무생물도 수명이 있다. 방사능 물질의 반감기에 대해서 들어봤을 것이다. 원자탄이 그렇게 무서운 것은 그 폭발력 때문만은 아니다. 폭발로 인해서 발생하는 방사능이 더 무섭기 때문이다. 방사능 물질은 수명이 있다. 이것을 과학에서는 반감기라는 말로 사용한다. 반감기란 그 물질이 반으로 줄어드는 데 걸리는 시간을 말한다. 반감기가 왜 수명이냐고? 그것은 다음 기회에 설명하기로 하고 반감기를 그냥 수명이라고 생각하자. 핵실험 후에 발생하는 요오드는 반감기가 약 1주일인 반면, 세슘의 반감기는 30년이나 된다.

한편, 소립자의 수명은 천차만별이다. 소립자들의 수명은 대부분 매우 짧지만 우주의 나이(137억년)보다 긴 것들도 있다. 원자의 핵을 만드는 입자인 양성자의 수명은 무려 된다. 우주의 나이가 약 양성자의 수명은 이것의 1조의 1조배나 더 길다. 우리가 사용하는 물건들이 사리지지 않고 그대로 있는 것은 바로 이 양성자의 수명이 이렇게 길기 때문이다. 양성자가 붕괴하여 없어진다면 우리가 보는 모든 물건은 물론 내 몸도 사라지고 없어진다. 물론 그렇게 되려면 우주가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 하겠지만 말이다.

영원히 죽지 않는다고 생각되는 빛조차도 결국은 영원하지는 않을 것이다. 아직 우리가 알지는 못하지만 이 우주조차도 언젠가는 소멸할 것이다. 우리는 하루살이의 인생을 덧없다고 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의 생각이고 하루살이의 생각은 다를 것이다. 어떤 학자가 계산한 바에 의하면, 수억 분의 일 초밖에 살지 못하는 소립자가 생애 동안 다른 소립자와 나누는 상호작용의 횟수를 계산한 결과 한 인간이 일생동안 만나는 사람 수보다 많았다고 한다. 찰나를 살다가는 이 소립자의 일생이 그렇게 간단한 것은 아니다. 하루살이의 인생도 우리 인생 못지않게 파란만장한 인생일 수도 있는 것이다.

현대인들의 가장 큰 문제 중의 하나는 어떻게 죽지 않고 오래 사느냐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의료 기술이 발달하면서 인간의 수명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아마도 조만간 인간의 평균수명은 100세를 넘을 것이다.

조금 더 지나면 아마도 죽지 않는 세상이 올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간의 단위를 우주적 시간으로 넓혀보면 죽지 않는 존재란 존재하지 않는다. 수명을 늘리는 일만이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이 노력해야 할 일의 전부는 아니다. 죽지 않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없다면 삶은 얼마나 허무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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