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장에게서 인내를 배우다
거장에게서 인내를 배우다
  • 유현주<청주시립도서관 사서팀장>
  • 승인 2017.12.26 20:0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타임즈 포럼
▲ 유현주<청주시립도서관 사서팀장>

역사 속 위대한 업적을 남긴 사람들의 삶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고집스러울 만큼 강한 집중력을 가졌다는 것이다. 이렇듯 놀라운 불굴의 의지로 그 어떤 국가도 해내기 힘들었던 일을 개인이 해낸 여성이 있다. 바로 직지 대모 박병선 박사다.

1955년 우리나라 역사상 여성으로서는 최초로 프랑스 유학을 간 그녀는 대학교 은사의 영향을 받아 병인양요 때 프랑스에 의해 도난당한 `외규장각 의궤'가 프랑스 땅 어딘가에 있을 것이라는 의구심을 품고, 그것을 반드시 찾아야겠다는 목표를 세운다.

학위 취득 후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취직해 시간날 때마다 주변 다른 도서관과 고서점을 돌며 의궤를 찾아다녔다. 그 과정에서 그녀의 눈에 띈 직지심체요절, 이때만 해도 유럽에서는 한자로 쓰여 진 책은 모두가 중국 책이라는 인식이 팽배했던 시절이었다. 이름조차도 낯선 아시아의 작은 나라에서 개발한 인쇄술이 유럽이 개발한 인쇄술보다 78년이나 앞섰고, 그걸 입증할 고문서가 프랑스 땅에 있었다는 것이 프랑스 전역에서 굉장한 사건이 되었다.

이때부터 박병선 박사는 우리나라 고서들이 중국 책으로 분류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구심을 갖게 되었는데, 같이 일하던 프랑스인 사서가 무심코 던진 한 마디가 박병선 박사의 마음에 확신을 심어주었다. “박병선 박사, 도서관 별관에 가면 그런 중국 책들이 어마어마하게 많아.”

그때부터 그녀는 국립도서관 바르세이유 별관에 쌓여 있는 3000만권의 고서를 한권, 한권 뒤지기 시작했다.

그녀는 그 속에서 우리나라 의궤라고 생각되는 고서를 발견해 낸다. 하지만 의궤는 군데군데 오려지고, 훼손된 상태였다. 그 사실을 프랑스 도서관에 보고했지만, 그 대단한 자료를 이렇게 오리고 훼손한 것에 몹시 당황한 프랑스 도서관 측은 기밀 누설을 이유로 박병선 박사를 해고한다. 거기다가 훼손된 의궤가 누구 짓인지를 알아낼 때까지는 열람조차 불가했다.

박병선 박사는 일반 이용자 입장으로 몇 달에 걸쳐 열람권을 요구해 기어이 열람권을 얻어낸다. 이후 10년 동안 매일매일 도서관을 찾아가 일반이용자 자격으로 열람을 신청, 자신이 의궤라고 추측하고 의심을 품었던 책들을 한 권 한 권 꺼내어 꼼꼼히 살펴보고, 목록을 완성해 세상에 공개한다.

조선 당대 최고의 도서 수준과 예술적 품격을 담은 의궤를 찾아내고, 민족의 자긍심인 `직지심체요절'의 실체를 밝힌 박병선 박사. 그녀가 진정 대단한 것은 의궤를 찾겠다는 굳은 심지로 56년간을 인내심을 가지고 묵묵히 실천한 행동력이다. 그녀는 말했다. “무엇을 하든 인내와 끈기를 가지세요. 시작을 했으면 끝을 보려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그리고 사소한 일이라도 최선을 다해서 하는 정신이 필요합니다.” 밝아오는 새해, 희망의 계단을 힘껏 밟아 올라가야 할 우리가 새길 덕목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