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29명의 꿈을 짓밟았나
누가 29명의 꿈을 짓밟았나
  • 김금란 기자
  • 승인 2017.12.26 20: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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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 김금란 부장(취재3팀)

잘못된 행동을 한 번 하면 우리는 실수라고 말한다. 같은 행동을 두 번 하면 습관이고, 세 번 이상 반복하면 고질병이다.

언제부턴가 사고가 터지면 우리는 안전불감증이라는 말로 호들갑을 떨었다.

막을 수 있었는데, 안전점검만 제대로 했어도, 초기 대응만 잘했어도 등등. 사후약방문 같은 소리만 쏟아냈다.

같은 실수로 수많은 희생자가 발생하는 인재(人災) 사고를 여러 번 목격했는데도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

지난 21일 발생한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로 29명이 사망한 사고도 마찬가지다.

이번 사고로 서울명문대 4년 장학생으로 합격한 제천여고 3학년 김 모양은 내년 3월 꿈꿨던 캠퍼스를 밟아보지도 못한 채 18세의 삶을 마감했다.

함께 여행을 다닐 정도로 단란했던 외할머니, 딸, 손녀 3대의 행복했던 목욕탕 나들이도, 떡을 좋아하는 남편을 위해 백설기를 사두었던 아내도 끔찍이도 자식을 사랑했던 아버지도 화마에 희생됐다.

안타깝고 애절한 사연을 뒤로하고 속속 드러나는 화재 원인은 결국은 총체적 부실이었다.

20명의 사망자를 낸 2층 여성 사우나 비상구는 창고로 만들어져 막혀 있었고, 1층 스프링클러는 아예 작동하지 않았다. 유독가스를 배출하는 배연시설도 작동하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참으로 황망한 일이 발생했고, 대통령으로서 참담함을 느낀다”고 말한 대통령도, 장관들도, 여·야 정치인도 모두 제천을 방문해 범정부차원의 대책과 수습을 약속했지만 국민은 여전히 불안하다.

불과 3년 전에는 세월호 침몰 사고로 304명이 목숨을 잃었고, 이달 초에는 영흥도 낚싯배 전복 사고로 15명이 사랑하는 가족의 품을 떠났다. 이어 발생한 제천 대형 화재 참사에 이어 성탄절인 25일에는 수원 광교신도시 오피스텔 공사현장 화재사고로 1명이 사망했다.

대형 사고가 발생하면 정부는 예나 지금이나 수없이 많은 안전 정책을 내놓는다. 세월호 사고를 잊지 않겠다며 노랑리본을 달고도 다녔고, 제천 참사 이후 지금은 검은 리본을 부착해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하고 있지만 정작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무뎌진 안전의식이다.

`기본이 무너지면 모든 것이 무너진다'는 기본의식이 없다면 정부의 컨트롤타워도, 매뉴얼도, 안전조직도 무용지물이다.

세월호 사고도 안전 수칙을 제대로 지켰다면 수백명의 희생자들은 가족 품에서 올해 성탄을 보냈을 것이다. 제천 참사도 비상구에 창고를 만들지 않았다면, 정상적으로 스프링클러가 작동됐다면 29명의 소중한 꿈을 지켜주었을 것이다.

국민은 세월호 참사도, 제천 스포츠센터 참사도 기억에서 지울 수가 없다. 남의 일이 아니니까.

안전규칙을 준수하지 않은 업자, 위법행위를 계급장 정도로 여기는 정치권, 국민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 공무원. 기본을 무시한 채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것도, 이익 앞에 눈감고 귀 막는 것도 권력으로 착각하는 이들을 관대한 눈으로 바라보는 한 인재 사고는 되풀이될 것이다.

일본의 기업가 데구치 하루아키가 말한 것처럼 “어려울 땐 기본으로 돌아가고 막힐 땐 원칙으로 승부하라”는 조언을 기억하길 바란다.

기본과 원칙을 무시해 제천 참사를 겪은 것을 계기로 정부나 정치권이 반성은 하되 국민을 지키지 못한 죄책감은 잊지 말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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