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판보다 치욕을 뼈에 새길 때
비판보다 치욕을 뼈에 새길 때
  • 권혁두 기자
  • 승인 2017.12.26 20: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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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論
▲ 권혁두 국장

문재인 대통령의 방중외교가 조공·사대 혐의를 쓰고 연일 도마에 올랐다. 여론의 평가도 지난 미국방문만 못하다. 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 55%가 방중외교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미국 방문때는 70%를 넘었다. 고공행진하던 대통령 지지율도 한풀 꺽이는 모양새다. 한 신문 칼럼은 대통령의 중국방문을 `전대미문의 외교참사'로 규정하고 중국에 당한 7가지 수모를 조목조목 거론했다. 일개 차관보급이 공항에 나와 영접했고, 공동성명이 없었고, 왕이 외교부장이 대통령 어깨를 툭 쳤고, 리커창 총리가 함께 밥 먹자는 제안을 거부했고, 그래서 6끼나 혼밥을 했고, 수행기자가 집단폭행을 당했고… 등등이다. 건건을 따져보니 청와대 해명대로 이해가 가는 부분도 있고, 명백한 홀대요 무시로 보이는 경우도 있다.

우선 곱씹을 대목은 대통령이 융숭한 손님 대접을 받으러 중국에 간 게 아니었다는 점이다. 북핵 문제와 평창 동계올림픽에 대한 협조도 부탁해야 했지만, 사드 배치로 잔뜩 골이 나있는 중국을 달래서 발등에 떨어진 불인 경제보복을 멈추도록 하자는 게 1차적 목적이었을 것이다. 그동안 사드에 대한 중국의 반응은 내내 민감하고 강경했었다. 문 대통령 역시 체류 일정이 화기애애하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각오를 하고 비행기에 올랐을 터이고, 그 예상이 어느 정도 들어맞았을 뿐이다.

대통령이 저자세를 취할수 밖에 없었던 상황을 도외시하고, 굴욕을 참기만 했다고 비판을 퍼붓는 것은 부당하다. 비난은 `을'의 입장으로 찾아간 상대국 대통령에게 갑질을 함으로써 대국의 체모를 잃은 중국을 향했어야 한다. 홍준표 대표를 맞은 아베 일본 총리가 고개를 숙인 상대에게 뻣뻣이 고개를 들고, 홍 대표를 자신의 것보다 낮은 의자에 앉게한 무례가 홍 대표를 탓할 일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다.

이 와중에 이명박 전 대통령은 “우리나라는 작은 나라가 아니다”고 했다. 문 대통령이 중국서 한 발언을 꼬집은 것이다. 문 대통령은 방중 기간 베이징대 연설에서 “중국은 주변국들과 어울릴 때 그 존재가 빛나는 국갚라며 “한국도 작은 나라지만 책임 있는 중견국가로서 그 꿈에 함께 할 것”이라고 말했다. 야당으로부터 한국을 소국으로 자처한 자기비하적 발언이라는 비판을 받았는데, 이 전 대통령이 그 지적에 가세한 것이다. 그러면서 이 전 대통령은 “한국은 세계 11위의 경제 대국”이라고 덧붙였다.

연초에 한 외국 연구기관이 중국이 `재채기'를 하면 아시아 국가들은 싱가포르와 대만, 베트남, 한국, 말레이시아 순으로 `독감'에 걸린다는 전망을 내놨다. 세계 11위 경제 대국의 체질이 중국의 입김에 휘청거릴 정도로 영 허약하다는 얘기다. 실제로 우리는 수출의 26.1%를 중국에 의존한다. 두번 째인 미국보다 10%P나 높다. 전체 교역규모가 미국의 2배, 일본의 3배에 달한다. 한국은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다. 밥줄이 중국시장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국이 시장을 닫아걸면 치명상을 피할 수 없는 게 우리 경제의 현주소다. 수출 다변화를 꾀해 중국 의존도를 낮춰야 한다는 주장이 오래 전부터 제기돼온 이유이기도 하다.

중국이 비약적 발전기에 접어든 것은 80년대 들어서다. 당시 중국 지도자 덩샤오핑은 어둠 속에서 힘을 기르며 조용히 때를 기다린다는 `도광양회(韜光養晦)'를 키워드로 국력을 키워 나갔다. 불과 30년만에 중국은 자신을 덩치만 큰 종이 호랑이로 취급하던 미국의 유일한 라이벌로 떠올랐다. 한국을 베끼던 나라에서 한국 경제의 숨통을 틀어쥔 경제 강국으로 성장했다. 이번 대통령 방중에서 이 현격한 격차가 재차 확인됐고, 그 사이에 관용과 배려의 미덕이 들어설 틈이 없다는 냉혹한 현실도 드러났다.

그 현실 앞에서 우리가 할 일은 쓰디 쓴 혼밥을 씹고 온 대통령을 비판할 것이 아니라, 치욕의 순간을 뼈에 새기고 깊이 성찰하는 것이다. 푸대접을 받은 것은 대통령 개인이 아니라 국가와 국민이라는 자각을 하는 것이다. 중국에는 통하지 않는 세계 11위 경제대국의 허상을 깨고, 그들이 40년 전에 가슴에 묻고 이를 악 물었을 `도광양회'의 정신을 빌려 `자강불식(自强不息)'의 결기를 다져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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