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천 참사는 부산 노래방 화재와 판박이
제천 참사는 부산 노래방 화재와 판박이
  • 이재경 기자
  • 승인 2017.12.25 19: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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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 이재경 국장(천안)

대한민국 헌법 34조는 국민의 생존권, 건강권, 여성의 권리와 삶의 기본권 등을 명시하고 있다. 총 6개 항인데 그 중 제6항은 특히 생존권에 대한 국가의 무한 책임을 강조하고 있다.

그 문구는 다음과 같다. `국가는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

지난해 8월 대법원이 상고심에서 헌법 34조 6항을 언급하며 공무원들의 질책한 일이 있었다.

이 재판은 2012년 5월 5일 20~30대 9명의 목숨을 앗아간 부산 서면 노래주점 화재 사건의 유족들이 건 민사재판으로 4년을 끌었다. 16명의 유족이 원고였으며 피고는 노래주점 업주 4명과 소방행정의 책임기관인 부산광역시였다.

공방이 집중된 쟁점은 비상구 관리에 대한 공무원의 책임 소재 여부였다. 화재 당시 노래주점 비상구 세 곳 중 두 곳이 폐쇄돼 있었는데 소방 점검에서 이를 발견하지 못한 공무원들의 책임이 어디까지인가를 놓고 치열한 다툼이 벌어졌다.

결과는 유족들의 승소였다. 재판관들은 소방 공무원들의 직무상 의무 위반을 지적했다. 노래방 업주들이 2009년 개업 직후부터 3년여간 일부 비상구를 폐쇄해 영업장으로 사용하고, 또 다른 비상구로 이르는 통로를 술 창고로 사용해 피난로를 확보하지 않은 점 등을 주목했다. 이를 근거로 `비상구 폐쇄 및 차단 행위를 소방 공무원들이 발견하지 못하고 방치했으며, 결국 노래주점 손님들이 사망에 이르게 한 빌미를 제공했다'고 판시했다.

부산시가 주장한 무죄 취지 근거인 `인력 부족', `업무 과다' 등은 받아들여 지지 않았다. 당시 부산시는 `소방 검사 대상이 광범위하고 검사 인력이 부족한 상태에서 소방 공무원들이 일일이 비상구 폐쇄 여부 등을 정밀 점검하는 것은 불가능해 과실은 없다'고 주장했다.

이 재판에서 대법원은 부산시와 업주들의 상고를 모두 기각하고 항소심 판결대로 부산시와 업주들이 연대해 유족들에게 19억7000만원을 지급할 것을 명령했다. 이 재판은 재난이 발생한 건물의 비상구 유지 관리를 제대로 감독하지 않은 공공기관의 직무상 과실을 인정한 판결로 크게 주목을 받았다.

지난 21일 충북 제천시 하소동의 한 스포츠센터에서 화재로 29명이 사망하는 끔찍한 사고가 발생했다. 5년 전 부산 서면 노래주점 화재 사건의 판박이다. 2층 여자 사우나에서 목숨을 잃은 20명은 끝내 비상구를 찾지 못하고 갇혀 참변을 당했다. 비상구 유도등이나 표시등은 아예 없었으며 비상구는 목욕용품으로 꽉 찬 채 밖에서 잠겨 있었다.

이번 제천 화재 참사는 역대 최악의 인재 중 하나로 남게 될 전망이다. 여탕이라는 이유로 비상구 점검을 하지 않고 돌아갔다는 소방 업무 대행업체의 얘기는 귀를 의심하게 한다. 제천 화재 현장은 바로 우리 사회에 만연한 안전 불감증의 현주소다. 불과 5년전의 부산 화재 사고를 그대로 답습했다. 얼마나 더 희생을 치러야 국가가 국민의 생존권을 보장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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