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즉불통(通卽不痛)
통즉불통(通卽不痛)
  • 최명임<수필가>
  • 승인 2017.12.25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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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 최명임<수필가>

굴뚝이 막혀 독소를 품은 연기가 역류한다. 막힌 굴뚝을 해체했더니 암적 존재들이 검은 핏덩어리처럼 엉기어 질탕하게 쏟아졌다. 말끔하게 청소한 굴뚝을 다시 세우면서 깨달은바 통즉불통이다.

아버지는 왜정 치하 불통 시대를 고스란히 살아내셨다. 일곱 살에 어머니를 여의고 서모 밑에서 자랐으니 허허로움도 만만치 않았을 터인데, 조국마저 떠나버린 불안한 미래가 이유였을까. 뿌리 없는 바람이 되어 타국을 전전하셨다. 만주로 일본으로 방랑객이 되었던 아버지는 여러 해 일본에 머물면서 한의학에 심취하셨다. 젊음을 바친 대가로 돌아오셔서 한약방을 차렸다.

가난을 업처럼 붙들고 살았던 시절 사람들은 통증이 극에 달하고 병이 깊어져서야 아버지를 찾아왔다. 약값이 모자라도, 가을걷이가 끝난 뒤에 갚는다고 해도 말없이 약을 내어주곤 하셨다. 모질게 약값을 운운할 심성이 차가운 분도 아니셨지만, 남루한 시대의 동지애로 우호적 배려였거나, 통즉불통의 이치로 약을 처방하고 침을 놓으며 더불어 심적 조력자가 되고자 한 것이리라.

연초가 되면 이웃들이 토정비결을 봐 달라고 찾아왔다. 재미로 보는 것이라지만 그날 사랑방은 희망을 얻어 가는 소통의 구역이 되기도 했다. 한때는 아이들을 모아놓고 훈장 노릇을 하셨는데 당신의 삶을 비추어 소통의 원리를 가르치셨을 거다.

한가한 날은 한서를 즐겨 읽으셨다. 기분 좋게 술 한잔하면 시조를 읊으셨는데 알알한 세월을 반추하는 듯 눈가가 젖는 날도 있었다. 아버지의 삶을 되새겨보니 귀양지에 묶인 선비의 고뇌가 보이고 어느 때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낙향한 선비처럼 편안함이 보인다.

정작 지어미의 속사정은 모르셨다. 어머니의 가슴은 때때로 놋화로의 잉걸처럼 타올랐다. 그럴 때는 곡기를 끊었고 아버지께선 약탕기에 불을 지피셨다. 어머니가 겪었던 오랜 치통과 위 천공은 불통의 결과였다. 층층시하 시집살이와 가족 구성원의 구조적 모순이 몸을 무너뜨린 것이다.

젊은 부부의 가족 해체는 물론 황혼 이혼이 이혼율의 3분의 1을 넘어섰다. 불통의 여파가 걱정스럽다. 50여 년의 인연을 끊고 돌아서는 노부부를 보며 그 속을 짐작해 본다. 절절히 공감하다 문득 내 안을 들여다보니 나 아닌 부정한 것이 가득 차서 어둡다. 막힌 굴뚝을 청소하듯 쏟아버리면 소통으로 가는 지름길이 보일 것 같다.

얼굴빛이 환한 그녀를 만났다. 부부 문제로 갈등하던 그녀는 표정이 늘 어두웠다. 최악의 경우도 생각했다는 그녀의 말인즉, 저를 놓아버리니 그가 마음을 열었단다. 눈에 거슬리던 것이 수용되고 언제나 앞서던 그가 그녀의 발걸음에 나란히 맞추던 날 진정한 동지, 조강지부로 받아들였단다. 통즉불통이다.

가랑비에 옷 젖듯 나도 슬그머니 젖어온다.

항간에 떠도는 소문이 나랏일도 불통이란다. 둔한 내 귀도 시끄러울 정도니 예삿일은 아니다. 건국 이래 바람 잘 날 있었을까만, 지금 반도가 이리 시끄러움은 무엇이 문제인지?.

`나'에서 가족으로, 이웃으로, 국가로, 크게는 세계로 가는 길에 불통은 수많은 문제를 만들어낸다. 문제 핵심에는 언제나 나'가 있다. `나'는 부자처럼 약성이 심오해서 사람의 생사를 가르기도 하고 국가의 존폐 위기를 부르기도 한다. 다스리는 방법에 따라 소통과 불통을 오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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