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아, 너의 권리를 위해 싸워라
아들아, 너의 권리를 위해 싸워라
  • 정현수<칼럼니스트>
  • 승인 2017.12.21 20: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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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 論
▲ 정현수<칼럼니스트>

지난 10일, 황당한 신고가 경찰에 접수됐다. 청주의 모 편의점에서 알바가 비닐봉지 두 장을 가져갔으니 처벌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A양이 자신이 일하던 편의점에서 컵라면 등을 사고 담아 간 비닐봉지 값을 계산하지 않아 절도죄의 용의자로 지목된 것이다. 평소 최저임금과 주휴 수당, 야간 수당을 요구했던 A양을 골탕먹이려는 점주의 악의적인 신고였다. 분노한 시민들의 항의가 이어졌고 충북의 시민단체들이 편의점 앞에 집회 신고를 냈다. 해당 편의점은 일주일을 버티지 못하고 결국 문을 닫았다.

충북 in news의 김 모 기자의 기획 보도로 전국 편의점의 임금 실태가 드러났다. 많은 점주들이 최저임금을 지키지 않았고 주휴 수당과 야간 수당도 주지 않았다. 신입사원에게는 최저임금의 90퍼센트만 지급한다는 본사 내부 규정을 들먹이며 힘없는 청년 알바들의 노동을 착취해 왔다. 그런 점주들에게 돌아가야 할 비난이 엉뚱하게 경찰을 향했다. 20원짜리 비닐봉지 한 장 가져간 걸 굳이 절도 사건으로 접수해 A양을 조사할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다. 경찰의 사건처리 방식과 시민들의 법 감정 사이의 괴리는 깊고 컸다.

돌이켜보면 경찰의 처리 방식이 일을 키웠다. 신고를 접수한 경찰은 A양과 어머니를 지구대로 데려갔다. 동행을 거부할 수도 있었지만 이들 모녀에겐 그런 담대함이 없었다. 아침 댓바람부터 절도사건 운운하는 경찰의 방문에 모녀는 얼마나 놀랐을까. 편의점 내 CCTV를 확인해 달라는 신고자의 요구에 경찰의 난감함도 이해는 되지만 공권력이 악덕 업주의 민원에 줏대 없이 휘둘린 건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피해 액수나 전후 사정에 상관없이 신고자의 조사 요구가 강력하면 경찰은 사건을 접수할 수밖에 없다.

인터넷에 편의점 가맹 점주들의 카페가 있다고 한다. 이곳엔 최저임금과 주휴 수당을 받지 못한 알바들이 노동청에 고발했을 때의 대처법이 공개돼 있는데 내용이 가히 충격적이다. CCTV에 알바가 유통기한이 지난 폐기 식품을 먹는 게 찍혔으면 보험 삼아 저장해 두었다가 횡령으로 맞고소하면 알바는 십중팔구 고발을 철회하고 오히려 사과하러 온다고 일러준다. 최저임금과 주휴 수당 따지는 까다로운 알바는 임금을 동전으로 주고 경찰이 사건을 접수하지 않으면 민원을 넣겠다고 협박하면 된다는 내용도 올라와 있다.

애초에 경찰이 단호하게 대처했더라면 어땠을까. 신고자가 아무리 절도라고 우기고 민원을 넣겠다고 협박해도 사안이 경미하고 감정 섞인 신고라면 각하해야 하지 않을까. 어차피 `혐의 없음'으로 내사종결 될 사건이라면 접수를 거부할 수도 있었을 텐데. 그랬다면 경찰이 욕먹는 일도, 편의점이 문 닫는 일도, 알바가 마음에 상처를 받는 일도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출동한 경찰에게 책임만 있고 권한이 없는 현실에서 이를 기대하긴 어렵지만 사건 발생 열흘이 지나도록 경찰에서는 아무런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며칠 뒤 대학생 아들이 방학을 맞는다. 궁핍한 아비의 사정을 아는지 녀석은 벌써부터 알바 찾기에 고심이다. 인기 있는 곳은 모두 자리가 찼으니 아들은 그 사납다는 편의점 알바를 면하지 못하리라. 시인 김주대는 그의 시 「부녀(父女)」에서 아르바이트 끝나고 새벽에 들어오는 아이의 추운 발소리를 듣는 아비는 잠결에 귀로 운다고 노래했다. 나 역시 아들의 추운 발소리를 겨우내 들어야 한다. 유통기한이 한참 지난 차가운 음식을 집어 먹고 점주에게 고발을 당하더라도 아들에게 분명히 이르겠다. 너의 권리를 위해 싸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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