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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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명숙<수필가>
  • 승인 2017.12.21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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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 정명숙

산자락에 구름 홀연히 내려앉았다.

찬바람이 습기를 잔뜩 머금더니 눈이 날린다.

바람의 세기에 따라 눈은 땅에 내려앉는 시간이 길어지는 것 같다. 사선으로 너울대는 모습이 스산하다.

날리는 눈과 함께 서늘한 소식이 날아든다. 늦은 부고다.

예상은 했지만 그래도 설마 했던 그녀의 기막힌 삶이 허무하게 끝났다. 지난주에 전화했을 때 신호음만 갈 뿐 받질 않아 지인에게 연락을 해봐도 소식을 모른다 했다. 병세가 깊어진 것은 아닐까, 걱정이 겨울밤처럼 깊어지는 중이었다.

녹음이 짙어가던 지난여름 말기암 소식을 듣고 기막힌 현실이 믿기지 않아 며칠을 끙끙대게 했던 그녀의 장례식은 이미 일주일 전에 치렀다고 했다.

내가 전화를 걸고 있을 때 생의 경계선을 넘느라 받지 못했을까. 굳은 신념으로 꿋꿋하게 참고 살아야 했던 그의 삶이 아프다 못해 화가 치민다.

몇 년 동안 함께 요가를 했다. 십 년 가까이 요가를 한 나를 보며 언제쯤이면 동작을 그리 유연하게 할 수 있느냐며 환하게 웃던 그녀는 긍정적이고 말을 아끼는 사람이라 호감이 갔다. 낯이 익어가면서 옥상의 텃밭에서 수확한 상추를 비닐봉지에 담아 주기도 하고 어느 날은 아침에 딴 반들반들한 애호박을 신문지에 싸서 주기도 했다.

고마운 마음에 밥을 사면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다.

여름이면 시원하고 고소한 콩국수를 만들어 초대하고 김장했다고 햅쌀밥 지어 부르던 따듯한 사람이어서 속내를 떨어 놓기도 좋았다. 무엇보다 허접한 내 삶이 그녀의 삶과 겹쳐지면서 위로가 되기도 했다.

`내가 제일 잘한 일은 아무리 힘들어도 자식 사 남매를 품어 안고 산 일이야. 자식은 죄 없어, 무조건 참아야 해'

요가를 하지 않아 자주 만나지 않아도 가끔 생각나 안부를 물어보는 몇 안 되는 이들 중 한 사람이었던 그녀의 삶은 치열하고 극적이었다.

이름뿐인 남편은 생활비조차 주지 않았다. 가정살림과 자식교육은 오로지 그녀의 몫이었다. 매질은 자식들 모두 결혼시키고 큰손주가 중학생이 되었어도 멈추지 않았다. 큰 병이 든 것을 알기 직전까지 이어졌다.

“여자라도 열심히 일한 만큼 돈은 많이 벌어 자식들에게 넉넉하게 주었으니 그나마 다행이지.”

그녀의 바람대로 투덕대지 않고 사랑하며 탄탄한 직장 갖고 궁색하게 살지 않는 자식들 바라보는 것이 행복이라고 했다.

오로지 어미로만 한생을 살아낸, 모질게 밟혀도 다시 일어서는 풀꽃 같은 여인이 겨울 안개처럼 스러졌다. 자식들의 삶의 뿌리가 단단해지도록 기꺼이 밑거름이 되고 떠났다.

대설주의보가 내렸다. 강한 바람에 풍경소리가 요란하다. 내일 아침 길은 괜찮을까, 작별인사 가는 길이 미끄러우면 어찌하나, 남아 있는 사람들은 상실감에 빠져 있다가 그렇게 내일을 걱정한다. 눈은 내리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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