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춥고 길었던 20년 전 겨울
유난히 춥고 길었던 20년 전 겨울
  • 권진원<진천 광혜원성당 주임신부>
  • 승인 2017.12.21 18: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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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자의 목소리
▲ 권진원

며칠 전 방송을 보다가 20년 전 IMF 외환위기를 되돌아보는 프로그램을 시청했습니다. 당시의 외환위기는 한국 근현대사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이어서 한국전쟁 다음으로 순위를 차지할 만큼 사람들에게 깊은 무엇인가를 남긴 때였습니다.

하지만 그 때 이야기를 하시는 분들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금기시된 일처럼 어느덧 불문율이 되어버려 모두들 묵묵히 지나갈 뿐입니다. 너무 아프고 고통스런 기억이라 지워버리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그해 겨울이 다른 때보다 더 춥고 길게 느껴졌던 것은 저만의 기억이 아닐 것입니다.

한국전쟁 후 대한민국은 한강의 기적을 이루며 괄목할만한 경제성장을 이루었습니다. 모두들 무던히도 “잘 살아보세~”를 외치며 열심히 땀을 흘려 우직한 소처럼 제 할 일을 했습니다. 다들 힘겨우면서도 열심히 살았으니 노후에는 편안히 시골에서 자그마한 밭이나 일구며 여생을 즐기리라는 청사진을 마음에 품었습니다. 그런데 난데없이 날벼락이 떨어졌습니다.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은 실업자가 되어 거리에 나앉았습니다. 제조업에서 서비스업까지 산업 전반의 모든 분야에서 그 여파는 실로 대단했습니다. 곧 한국경제가 망하는 것은 아닌지 TV 앞에 모인 사람들의 걱정 어린 표정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그러나 이 위기를 극복하고자 당시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집안과 장롱 구석에 고이고이 숨겨두었던 금붙이들을 기꺼이 모금하였습니다. 고사리 손의 아이에서부터 휠체어를 탄 장애우와 지팡이를 짚고 나온 어르신까지 누구 하나 예외 없이 모두 하나가 되어 이 국난극복을 위해 발 벗고 나섰습니다. 금융권과 기업의 줄도산 상황에서도 자신의 노후자금인 퇴직금과 연금을 부어서라도 그 큰 파도를 잠재워보겠다고 힘겹게 버티었지만 돌아오는 것은 실직과 경제적 가난이었습니다.

끝을 알 수 없는 경제와 산업의 추락은 많은 사람에게 극단적 삶을 선택하도록 내몰았습니다. 삶의 자그마한 희망마저 빼앗긴 이들에게 산다는 것은 사치스런 일이었는지도 모릅니다. 2000년대 초반 우리나라의 자살률의 급증이 그 증거일 것입니다. 이혼하는 가정이 늘어나 가정이 해체되고 아이들은 방황하고 갈 곳을 잃었으며 실업자들은 노숙자로 전락하기도 하고 사회의 양극화는 점점 심화되는 사회 전반의 몰락을 경험했습니다.

제 주변에도 그때의 고통이 트라우마가 되어 떠올리기 싫어하고 그 여파가 여전히 진행형인 분들도 계십니다. 물론 그때의 빚을 최근에 다 털었다며 좋아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20년의 시간, 강산이 두 번이나 변할 동안 삶의 버거움을 지니고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비극이 아닐 수 없습니다.

현재 우리나라는 국민소득 3만불 시대에 살고 있지만 여전히 우리 주위에는 가난과 궁핍에서 허덕이며 끼니를 걱정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더욱이 이영학 사건의 여파로 사람들이 기부하기를 꺼려서 올겨울엔 사회복지 공동모금의 불우이웃돕기 성금과 구세군 자선냄비도 목표량에 훨씬 모자란 기부로 걱정된다는 뉴스를 접했습니다.

나 하나만 잘 살면 된다는 이기주의가 아니라 20년 전 함께 고통을 감내하고 너나 할 것 없이 두 손을 걷어붙이고 십시일반 금과 외화를 모으며 허리띠를 졸라매던 인고의 때를 더듬어 모두가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 그 누구도 차별받지 않고 굶주리지 않는 희망찬 세상을 기대해보며 올겨울에도 불우이웃 돕기 성금의 온도계가 끝까지 올라가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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